[책마을] 필요와 필요를 이어줄 때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시장에는 다양한 사연이 있다. 시장이 안정적이고 구매층과 판매층이 두터우면 거래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시장이 모두 그런가? 이에 대해 의문을 품은 많은 학자가 있었다. 게임이론으로 더 나은 시장을 설계하는 데 몰두한 휴머니스트 경제학자 앨빈 로스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스는 어떤 시장이든지 제대로 설계되고 안정적인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시장에 법칙이 없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시장이 왜곡되거나 잘못됐다면 이를 시정하고 새로운 규칙으로 제대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시장을 만난다. 일반 상품시장처럼 구매에 어려움이 없는 시장을 만나기도 하지만 소수만 ‘매칭(거래, 짝짓기)’이 이뤄지는 생소하거나, 금지되거나, 제약이 있는 어려운 시장과 마주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돈이 없어 그 시장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장의 설계가 불완전하다면 이는 잘못이다. 그런 경우 시장을 제대로 설계해 ‘매치 메이킹(match making)’할 필요가 있다. 결혼시장, 주택시장, 잡마켓, 학교 배정도 어찌 보면 매칭이 필요한 시장이다. 매칭은 시장에 참여하는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경우에 필요하다.

[책마을] 필요와 필요를 이어줄 때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시장 설계의 대가인 로스가 쓴 《매칭》은 그의 매칭 이론을 시장 실패, 혐오 시장, 소비자 선호, 혁신적 시장으로 나눠 ‘시장은 왜 실패하고 제대로 설계돼야 하는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수학을 응용한 게임이론으로 신장 이식의 기회를 확대한 로스는 장기 거래처럼 금지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혐오 시장(repugnant market)’에 큰 관심을 가졌다. 로스는 혐오 시장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거래를 어떻게 문제 없이 성사시킬지 경제학자들이 절실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에서 경제적 알고리즘을 활용해 신장 기증자와 신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연결해주는 매칭 프로그램을 개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매칭 이론을 신장 이식 이론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로스는 장기 거래 시장은 돈이 오가는 상품시장과는 달리 ‘돈이 오가지 않는 시장의 알고리즘’으로 다르게 설계했다. 신장 이식 기증자와 수혜자 사이의 매칭 문제를 생각하면서 미국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지역 신장이식센터의 역할을 강조했다. 흩어진 센터를 통합, 두터운 매칭 시장을 설계해 제대로 짝짓기가 이뤄지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은 그의 공로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새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로스는 남녀의 매칭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 게임이론을 적용해 ‘전통적 결혼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에 의하면 안정적인 결혼 상태란 배우자가 아닌 상대와 눈이 맞는 불상사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로스는 매칭 이론을 학교 배정에도 적용했다. 미국 사회가 더 불평등해지는 원인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판단해서다. 그는 가난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그들에게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의 선호와 학교의 선호가 잘 매칭되도록 시장을 설계해 2003년 뉴욕시 공립학교 배정 제도에 적용했다.

로스의 이론은 왜 우월할까. 단순히 학부모와 학생이 1순위로 선호하는 학교가 어디고, 거기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만 중요한 게 아니다. 매칭을 잘하려면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마음속으로 갖는 불안감, 두려움, 의구심을 해소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로스는 이를 잘 간파했다. 로스의 이론은 전문직의 구인구직 프로그램에도 적용돼 널리 활용되고 있다.

로스는 “경제학자는 매칭을 통해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을 세밀히 설계하는 엔지니어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매칭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인식한다. 그것이 공정한 시장의 설계라는 신념을 굳건히 했다. 매칭을 통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시장으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그의 말처럼 시장 설계는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작업이어야 한다. 우리 후대가 ‘더 큰 번영을 누리는 시장’을 설계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로스의 《매칭》을 적극 추천한다.

책의 마무리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시장 설계가 인간이 만든 가장 유구하고 본질적인 발명품(시장)을 유지하고 개선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로스는 경제학과 시장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학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조원경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 /《식탁위의 경제학자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