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민중미술, 중국 냉소아트와 만났다
민중화가 신학철 화백(73)은 사실주의 화법으로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통일, 정치, 사회, 농촌 문제 등을 다뤄왔다. 1960년대 미술그룹 AG(아방가르드협회)에서 활동한 그는 1985년 김정헌 임옥상 오윤과 함께 한국민족미술협의회를 설립했다. 1987년에는 ‘모내기’ 그림 사건으로 한국미술사에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신 화백보다 스무 살이 적은 팡리쥔(方立鈞)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절망, 무기력증을 화면에 담아냈다. 그는 장샤오강, 웨민쥔, 쩡판즈 등과 함께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인물. 중국인의 정체성 혼란을 서구 현대미술로 풀어내 ‘냉소적 사실주의’ 화풍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화가 팡리쥔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의 기획전 ‘기념비적 몸의 풍경’에 출품한 ‘무제 7’.
중국화가 팡리쥔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의 기획전 ‘기념비적 몸의 풍경’에 출품한 ‘무제 7’.
한국과 중국 화단에서 주목받는 두 사람이 작품으로 만났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서 지난 19일 개막한 ‘기념비적 몸의 풍경’전에서다. 신 화백은 서민 삶의 역사와 현실을 표현한 작품 넉 점을 출품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갑순이와 갑돌이’를 종이 콜라주로 재구성한 작품도 처음 공개했다. 팡리쥔은 자본주의의 급속한 유입으로 개인과 거대한 사회구조 사이의 충돌을 민머리 남성들을 소재로 작업한 근작 일곱 점을 걸었다.

현실 기반은 달라도 이들의 작품 세계는 사람의 신체를 활용해 역사적 경험과 동시대 현실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신 화백은 콜라주, 포토몽타주 등의 기법으로 얼굴이나 신체 이미지를 화면에 끌어오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인다. 최근 완성한 ‘한국현대사-유체이탈’은 크게 벌린 입과 커다란 눈을 서로 뒤엉키게 그려 여성의 몸에 통합한 작품으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신 화백은 “눈과 입이 뒤섞인 것은 뒤죽박죽된 한국의 정치현실을 시각화한 것”이라며 “TV에 나와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을 은유한다”고 설명했다.

남녀의 신체 모습을 마치 세월호 형상처럼 묘사한 ‘한국현대사-광장’,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몸을 조합해 완성한 ‘한국현대사-잠들지 못하는 남도’,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팔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은유한 ‘한국현대사-갑돌이와 갑순이’도 현대인의 몸에서 구현한 생명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팡리쥔 역시 한눈에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모호한 표정의 민머리 남성들의 신체를 화면에 끌어들여 중국의 억압적인 정치, 사회현상을 조롱한다. 그가 중국 화단에서 ‘냉소적 반항아’로 불리는 이유다. 적황토색 얼굴의 대머리 남성들이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우러러보는 작품은 언뜻 마오쩌둥 시대의 열광하는 인민 이미지와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을 콜라주로 형상화해 양감이나 무게감 효과를 아예 무시했다.

기법상의 특이함 때문인지 그의 화면에는 소소한 ‘메타포의 미학’이 시나브로 찾아든다. 작가는 “중국인이 새로운 자본주의 환경에 뿌리를 박고 그것에 합체돼 있는 것이 아니라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중국 사람들을 풍선처럼 근거 없이 떠 있는 존재, 뿌리가 없는 존재로 묘사했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찬규 학고재화랑 대표는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하는 점에서 신 화백과 팡리쥔은 서로 닮았다”며 “민중미술 브랜드를 세계화하기 위해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25일까지. (02)720-1524~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