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조각가 전광영 화백이 경주 우양미술관 회고전에 출품한 작품 ‘집합’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지 조각가 전광영 화백이 경주 우양미술관 회고전에 출품한 작품 ‘집합’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지조각의 거장 전광영 화백(72)이 다음달 30일까지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옛 경주 힐튼호텔 아트선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미국 유학시절 유대인에게 배운 날염 기법으로 풀어낸 작업부터 삼각형 크기의 스티로폼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뒤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붙인 설치작품까지 60여점을 내놨다. 50년 미술인생을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전시 제목을 ‘회고(A Retrospective)’로 붙였다.

전시장에는 전통 한지와 노끈으로 동여맨 작품들이 아련한 빛이 돼 점점이 흘러내린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과 영혼이 지문처럼 남겨진 고서를 즐겨 활용한 그의 작품에는 빛과 색의 멋, 인연과 연기(緣起) 같은 동양적 가치가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이 속세를 떠나 조용히 참선 수행하는 선방을 연상시키는 이유다. 수많은 고서 한지 조각들이 서로를 감싸안은 화면이 더 그렇다.

전 화백은 “1970년대 미국 유학시절 제작한 유화 작품에 무엇보다도 애착이 간다”고 했다. 화학성분을 바르지 않은 캔버스에 테이프 또는 짧고 길쭉한 종이들을 흩뿌린 뒤 혼합한 날염 안료를 드리핑하고 이를 떼어내어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반복한 작업이다.

드리핑에서 시작된 그의 회화는 삼각 형태의 스티로폼을 한지로 싸 평면에 구축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후반에는 평면 부조에 이어 3~4차원 입체와 설치 작업으로 진화했고, 인간의 욕망과 갈등의 알레고리를 ‘꿈’ ‘별’ ‘욕망’ 등의 부제를 통해 풀어냈다.

이런 작품들은 국내에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 등에서 주목받으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2009년 미국 코네티컷주 얼드리치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초대전은 뉴욕타임스에 리뷰 기사가 실릴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모리아트센터, 싱가포르 타일러센터, 미국 와이오밍대 부설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도 국제 미술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최근에는 뉴욕의 메이저 화랑 해스티드 클라우슬러를 비롯해 영국 런던 버나드제이컵슨, 독일의 벡&에글링, 캐나다 란다우 파인아트, 홍콩 팔람 등 세계 유수 화랑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전 화백은 “요즘에야 그림을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던져온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존재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이제 화면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품이 태어나야만 하듯, 화가도 숙명적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론입니다.” (054)745-707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