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묵직한 선율에 물드는 여름밤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사진)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체제,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등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며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 스탈린 체제에서 발표한 곡의 성격에 따라 정부 표창을 받으며 최고 음악가로 우대받기도 했고, 각종 경고와 금지령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생존과 음악적 가치관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 그의 고뇌는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음악으로 나타났다.

올해 탄생 110주년을 맞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삶을 재조명하는 연주회가 잇달아 열린다.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6회에 걸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등 전국을 돌며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들려준다.
오는 21일부터 쇼스타코비치 연주회를 여는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목프로덕션 제공
오는 21일부터 쇼스타코비치 연주회를 여는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목프로덕션 제공
김재영(바이올린) 김영욱(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문웅휘(첼로)로 구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제6번 G장조, 제8번 c단조를 연주한다. 손열음과 함께 피아노 5중주 g단조도 선보인다. 김재영은 “어두운 시대상이 음악에 반영돼 있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고 비틀어 표현한 것이 많다”며 “무거움과 풍자적인 부분이 공존해 서늘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열정이 여름과 잘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예술감독 임헌정의 지휘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작 교향곡 5번 d단조를 연주한다. 정부의 든든한 후원을 받던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쓰기 전 갑작스러운 위기에 직면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본 스탈린이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카테리나가 하인과 사랑에 빠지고 남편과 시아버지를 죽이는 내용이 못마땅했던 스탈린은 공연을 다 보지도 않고 일어섰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에게 닥친 가혹한 시련을 단번에 극복하게 해준 곡이 교향곡 5번이다. 절박함과 불안감, 진실성이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소비에트혁명 20주년 기념일에 연주돼 ‘정당한 비평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현실적이고도 창의적인 반응’이란 호평을 받았고, 그는 스탈린 정권의 지지를 다시 받았다. 코리안심포니 관계자는 “쇼스타코비치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담긴 곡”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