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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까칠해서 좋다. 스스로 주류임에도 스스럼없이 주류를 깐다. 그는 2011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정보경제학을 개척했고,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위원장을 지냈고,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책마을] 저성장 탈출구는 결국 '공부하는 사회' 만들기
주류 중의 주류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에 안주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시아 외환위기 당사국들에 고금리 정책과 재정긴축을 강하게 밀어붙인 것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쏟아부었다. 미국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 때문에 생산성 감소, 성장 둔화, 불안정성 심화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그의 관심 영역은 정보경제학에 머물지 않았다. 현실의 문제에 천착했고 그 해법을 고민했으며, 강의와 저술을 통해 대안을 제시해 왔다.

스티글리츠의 새 책이 나왔다. 컬럼비아대 동료 교수인 브루스 그린왈드와 공동으로 진행했던 ‘케네스 애로 기념 강의 시리즈’의 결과물이다. 스티글리츠는 《창조적 학습사회(Creating a Learning Society)》라는 제목이 붙은 신간에서 저성장의 탈출구는 ‘학습사회 만들기’ ‘학습경제 만들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책마을] 저성장 탈출구는 결국 '공부하는 사회' 만들기
여기서 ‘학습’이란 ‘더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른 기업에 비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좋은 성과를 올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학습사회’란 학습에 대한 능력과 인센티브를 증가시키고, 학습하는 법을 배우고, 가장 생산적인 기업과 여타 기업들의 지식 차이를 줄이는 등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다. 책을 통해 배울 수도 있지만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다. 이처럼 ‘더 잘하는 법’을 배우고, 학습사회를 만들어서,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최상의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스티글리츠의 주장은 새롭다.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한다.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나설 것을 권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강조한다. 시장이 만든 경제구조는 필요한 수준보다 너무 적은 학습과 성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과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목적은 학습과 학습의 파급효과를 촉진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학습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더 강조되는 새로운 산업·무역·환율·금융·외국인투자·특허(지식재산권)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자신의 제안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스티글리츠의 주장은 아프다. 그는 계층 간 격차가 작고 불안감이 적을수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더 많은 학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습에 대한 투자는 위험성이 있지만, 훌륭한 사회보장제도는 위험을 완화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평등이 확대되고, 불안감은 커져가고, 청년들은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공무원 시험장으로 몰려가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스티글리츠의 책은 일반인이나 경제학도는 물론 정부 관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2%대의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학습사회’라는 새로운 성장모형에 관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국회에서 중장기 미래 담론을 고민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기회가 돼 서울에서 스티글리츠 교수 강의를 듣는다면, 아마도 그는 창조경제 이후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담론은 ‘학습경제’라고 얘기할 것 같다.

김동열 <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