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테러리스트와 천재 해커의 대결을 다룬 영화 ‘해커스’의 한 장면.
폭탄 테러리스트와 천재 해커의 대결을 다룬 영화 ‘해커스’의 한 장면.
보안소프트웨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이노베이티브 마케팅’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본사를 뒀다. 뛰어난 기술자를 실리콘밸리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했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흔히 밟는 마케팅 경로를 따라 소비자를 끌어들이며 짧은 시간에 큰 성공을 거뒀다. 설립 3년 만인 2009년 매출 1억8000만달러를 올렸다. 근무 환경이 좋고, 수익성도 높아 겉보기엔 전도유망한 정보기술(IT)기업 같아보였다. 다만 제품이 문제였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이른바 ‘크라임웨어’였다.

[책마을] 모든 것이 연결될 때 모두가 위태로워진다
이 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퍼뜨린 악성코드 광고를 통해 수많은 웹사이트에 위장 폭탄을 설치했다. 사용자들이 감염 사이트에 방문하면 자동으로 악성코드가 다운로드돼 컴퓨터를 감염시켰다. 이를 통해 접근권을 확보한 이 회사 직원들은 컴퓨터 스크린에 ‘심각한 바이러스 감염’ 팝업창을 띄웠다. 사용자가 팝업창 안내에 따라 몇 번 클릭하다 보면 49달러인 이 회사 제품을 설치하지 않고는 컴퓨터를 작동시킬 수 없었다.

수많은 소비자가 당국에 신고하면서 이 기업 정체가 드러났다. 창업자들이 키예프에 회사를 둔 이유는 인건비보다 경찰을 쉽게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억달러를 번 창업자들은 체포되기 전 도망쳤고, 그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마크 굿맨 미국 싱귤래리티대 미래범죄연구소장이 《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에서 ‘글로벌 사이버 범죄 주식회사’의 한 유형으로 소개한 사례다. 저자는 수십년간 로스앤젤레스 경찰과 인터폴, 미국 연방수사국(FBI) 상임 미래학자 등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건을 접한 경험을 집대성해 눈앞에 다가온 미래 범죄의 위험을 경고한다. 여기서 미래를 훔치는 ‘누가’는 범죄조직뿐 아니라 첨단기술 최전선에 있는 해커와 크래커, 핵티비스트(해킹을 정치적 투쟁 수단으로 삼는 행동주의자)는 물론 사악한 목적을 가진 정부와 기업까지 포함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이제 총으로만 싸우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타깃을 실시간 확인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정보를 수집해 탈출 경로를 확보한다. 3차원(3D) 프린터는 범죄자에게도 신세계를 열어줬다. 무기를 들고 국경을 넘는 대신 원하는 곳에서 간단하게 총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직접 갈 필요도 없다. 초소형 드론(무인항공기)에 작은 폭탄을 실어 보내면 된다. 공공장소에서 특정 대상에게만 피해를 입히고 싶다면 그의 DNA 정보를 알아내 특별 제조한 생화학 물질을 뿌리면 된다. DNA 분석에는 100달러밖에 들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흘린 데이터뿐만 아니라 무심코 뱉은 침, 식당에서 사용한 컵, 목욕탕에서 흘린 머리카락을 범죄집단이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전문 작가 못지않은 글솜씨로 “모든 것이 연결될 때 모두가 위태로워진다”는 경고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한다. 개인정보 유출과 해킹, 테러집단의 기술 발전, 해커와 핵티비스트의 사이버 전쟁, 잔혹 범죄의 온상인 ‘다크 웹’의 실체, 사물인터넷과 로봇 시대에 닥칠 새로운 범죄와 몸속까지 노리는 바이오 도둑 등 이미 현실화됐거나 곧 다가올 모든 유형의 미래 범죄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풀어놓는다.

‘비합리적 낙관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양날의 검인 과학기술을 옳은 방향으로 이용해 범죄에 맞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개인 차원에서 인증받은 프로그램만 사용하고 출처가 불확실한 파일은 차단하는 등 ‘사이버 위생’을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세계보건기구(WHO)처럼 ‘사이버 공중보건’을 위한 새로운 국제기구도 제안한다. 하지만 한껏 풀어놓은 위험에 비해 소박한 수준이다. ‘대책’보다 ‘경고’에 비중이 쏠린 책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