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정래 씨가 1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가 조정래 씨가 1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간 40조원을 넘는 사교육시장의 병폐는 누구 책임일까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정부의 책임이고, 교육계의 책임이고, 사회의 책임이고, 학부모의 책임입니다. 이제 이들이 공동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내일은 점점 나락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원로 소설가 조정래 씨(73)가 《정글만리》 이후 3년 만에 새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해냄)를 냈다. 사교육에 의존해 과도한 입시 경쟁을 벌이는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조씨는 1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현실 참여적 의도’에서 이번 작품을 썼음을 분명히 했다.

조씨는 “한국 사회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이지만 이 지출이 유발하는 경제효과는 겨우 20% 정도”라며 “한국 경제가 10년 이상 계속 나빠지고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사교육”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아무 대책이 없어서 작가로서 이를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썼다”고 설명했다.

조정래 "장미꽃만 꽃인가요…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무너진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분투하는 고교 국어교사 강교민이다. 그는 교장이 전교생 모의고사 성적을 복도에 게시하자 “비인간적인 교육”이라며 반발하는 등 입시 위주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대기업 부장인 친구 유현우가 어느날 그에게 연락해 아들 문제를 상담한다. 유현우는 아들이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터였다. 유현우의 아내 김희경은 아들을 판·검사로 키워 돈, 권력, 명예를 갖도록 하는 게 꿈인 사람이다. 강교민은 유현우의 가족을 만나 설득하며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분투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성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저자의 절절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매끄러운 영어 발음을 하기 위해 입 성형수술을 받는 어린이, 부모의 성적 관리에 짓눌리다가 가출하는 중학생, 못생기고 가난하고 둔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는 고교생 등의 생생한 사례가 공감을 자아낸다.

“장미뿐만이 아니라 들판이나 길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피어나는 풀꽃도 엄연히 꽃인 만큼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잘났든 못났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똑같이 소중합니다. 단 한명의 학생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바람을 책 제목에 담았습니다.”

조씨는 “3년 동안 학교와 사교육 현장을 찾아다니며 관련 종사자를 취재한 뒤 지난해 말부터 집필했다”고 말했다. 작품에 나오는 사례들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뒀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청소년 사망 원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게 자살인데 지난 8년 동안 연평균 550여명이 자살했다. 하루에 1.5명이 죽은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씨는 “대학 안 가는 사람을 위해 국가가 마이스터학교를 설립해 생활인, 사회인으로 크게 하고 뉴질랜드 스위스처럼 고졸 전기수리공과 의사의 소득이 별 차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면 왜 발버둥치며 대학에 가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 독일 등은 제조업에서 질 좋은 물건을 생산해 세계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데 그게 기술 교육에서 나온 것”이라며 “미국도 창의식 교육을 통해 세계 발명 특허의 75%를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이 한국의 교육을 다시 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5~6권짜리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10년 내에 소설 3~4가지를 쓸 생각인데 내가 스물여덟 살에 등단했으니 55주년이 되는 여든세 살쯤 되면 소설은 더 이상 못 쓰지 않을까 싶어요. 다음 소설 뒤에는 시대 구분 없이 인간 존재, 영혼, 죽음에 대한 문제까지 포괄하는 세계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