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논란 해결 안되면 국내 미술계에 타격 불가피
일각 "그냥 내 말 믿으라 하면 어떡하나"…이 화백에 적극 해명 주문

우리나라의 대표적 현대 미술작가인 이우환 화백 작품에 대한 경찰의 위작 의혹 수사가 3일로 만 1년을 넘겼지만 오히려 위작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자칫 이번 사건이 사실상 '영구 미제'로 남아 해결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과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경찰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위작 의혹이 제기된 이우환 작품 13점에 대해 '진품과 다르다'는 의견을 낸 것에 대해 작가 자신이 "틀림없는 내 작품"이라고 반박하면서 위작 논란이 짙은 '안갯속'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화백이 "작가 본인이 보면 안다"면서 진품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의혹 해소는 훨씬 어려워진 형국이다.

◇ 경찰, 작년 6월 수사 착수…같은 해 10월 압수수색으로 표면화
작품 하나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이 화백의 그림에 대한 위작 논란이 표면화한 것은 경찰이 지난해 10월 인사동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하면서부터다.

경찰은 이 화백의 작품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를 위조한 가짜 그림이 2012~2013년 대량으로 유통됐다는 첩보를 받고 지난해 6월부터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지난해 12월 미술품 경매에 출품돼 5억여원에 거래된 이 화백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에 첨부된 감정서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민간 감정위원회, 한국미술품감평원 등 3개 기관은 올해 1월 경찰 의뢰로 위작 의혹이 제기된 작품에 대해 과학·안목 감정을 시행하고 위작 의견을 냈다.

이들 기관은 그 이유로 ▲ 캔버스와 나무틀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덧칠한 흔적이 있다는 점 ▲ 1960년대 이전 생산된 수제 못과 1980년대 생산된 고정침이 한 작품에 혼용된 점 ▲ 안료 등 표면 질감과 화면의 구도, 점·선의 방향성 등이 진품과 다르다는 점 등을 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경찰의 의뢰로 감정을 시행해 물감 성분과 캔버스 제작기법이 진품과 다르다는 점을 들며 지난달 2일 총 13점에 대해 위작 판단을 내렸다.

◇ 위작 판정 그림들 본 이 화백 "모두 틀림없는 내 작품"
경찰의 수사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위작 의혹이 제기되자 "그동안 내가 보고 확인한 작품 중에서는 위작이 없다"는 입장을 취해온 이 화백은 지난달 27일과 29일 경찰에서 위작 의혹 작품들을 직접 살펴본 뒤 "모두 진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달 30일 별도로 기자회견을 열고 "호흡이나 리듬은 지문과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다", "작가는 보면 1분도 안 돼서 자기 것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일련번호 중복 문제와 관련해 "그때는 너무 가난할 때고 그림이 팔릴 때도 아니어서 번호를 매기지 않았다"고 설명했고, 위작 의혹 작품의 물감 성분이 다른 작품과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이걸 쓸 때도 있고 저걸 쓸 때도 있다"고 말하며 경찰이 위작이라고 판정한 근거를 반박했다.

또 작가 본인의 감정이 다른 감정보다 우선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위작 논란 장기화 전망 속 적극적인 해명 주문
작가 자신이 "보면 1분도 안 돼서 자기 것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며 국과수의 위작 판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위작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미술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는 이 화백 본인이 '자기 작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이번 위작 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위작 판정에 안목 감정보다 과학 감정이 우선시된다는 점에서다.

한 전직 감정협회 회원은 "작가의 주장과 과학적 증거 사이에 무엇을 우선한다는 기준 같은 건 없지만 객관적, 실증적 증거가 분명하다면 당연히 그 증거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 본인이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다고 해도 작가가 계속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 위작 여부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이번 위작 논란이 사실상 영구미제로 남게 되면 이우환 작가를 포함한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이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가장 나쁜 것은 불확실성"이라며 "위작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걸러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장에 영향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 화백의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의뢰로 감정에 참여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무조건 내가 그렸다고 한다고 내가 그린 것이 되는 게 아니다"면서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우리도 가짜라고 보는 근거가 있으니까 주장하는 거다.

그런 부분을 작가가 해명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미술비평가도 "이 화백이 감정 기준작이 될만한 작품에 대한 물음에도 모른다고 했는데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 작품으로 전시를 한 사실이 확실하거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기준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기준을 줘야 한다.

그냥 위작이 있을 수 없다고만 하면 앞으로 나오는 작품에 대해서도 진위를 아예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