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왜 '가체금지령'을 한글로 썼나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의 자손)의 처와 첩, 여항(閭巷·여염)의 부녀로 무릇 다래를 땋아 머리에 얹거나 밑머리로 머리 얹는 제도는 일체 금지한다.”

조선 정조 때인 1788년 여인들의 가체(부인들이 머리를 꾸미기 위해 다른 머리를 얹거나 덧붙이던 것)를 금할 것을 규정한 가체신금사목(사진)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체는 원래 몽골에서 유입돼 유행했는데, 유학자 사이에서 사치스러운 풍속으로 인식됐다. 정조는 이를 금지하는 규칙을 적어 전국에 배포하면서 한자본과 한글본을 함께 보냈다.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 여성들도 금지조항을 이해하고 실천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한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다음달 1일부터 경기 성남에 있는 이 연구원 장서각 전시실에서 개최하는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 특별전이다. 세종대왕이 1449년 지은 ‘월인천강지곡’, 정조가 1778년 남긴 한글 친필, ‘동의보감’의 일부를 한글로 풀어쓴 ‘동의보감내경편언해’ 등 궁중과 민간의 한글 자료 100여점이 전시된다.

왕실의 공식 문서뿐만 아니라 평민과 노비들이 만든 일종의 ‘계모임 문서’ 등 민간 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상례나 제례 때 서로 도우려고 자체적으로 결성한 계를 운영할 때 한글을 썼는데 ‘황강아지’ ‘김뭉치’ 같은 순우리말 이름이 문서에 나온다. 이 문서는 경남 진주의 재령 이씨 종가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한중연이 고문서 조사·연구 사업으로 발굴했다. 전시는 오는 12월31일까지 계속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