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개정증보판을 출간한 문정희 시인. 양병훈 기자
최근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개정증보판을 출간한 문정희 시인. 양병훈 기자
등단 47년을 맞은 시단의 원로 문정희 시인(69)이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민음사)를 냈다. 2009년 출간한 같은 제목의 시선집에 새로 쓴 작품 40여편을 추가하고 기존 작품을 수정한 개정증보판이다. 문 시인 특유의 생명과 역동성, 삶에 대한 애정 등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들이 담겼다. 서울 삼성동의 한 찻집에서 문 시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시 세계를 ‘꽃’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문정희 "온 힘 다해 피는 꽃처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꽃은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활짝 피어있는 존재입니다. 꽃처럼 사람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걸 시를 통해 말해왔어요. 꽃은 곧 시들기 때문에 피어있는 그 순간이 더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생명도 마찬가지죠.”

이번 시선집에 담긴 시들은 “이 순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집을 읽다 보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서양 격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을 떠올리게 된다. 표제작인 ‘지금 장미를 따라’는 문 시인이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가를 방문한 뒤 쓴 시다. 문 시인은 그의 집에서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도 광기도 혁명도/ 무엇으로 쓸어야 이리 없는 것인지/ 빈 뜰인지”라며 황량함을 느낀다. 그 황량함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소멸된다는 교훈과 함께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 지금을 즐겨라”라는 메시지를 준다.

“시를 통해 생명의 근원을 노래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죽음과 삶 등은 얼핏 대립되는 듯하지만 모두 생명의 핵심을 구성하는 존재거든요. 어느 정도 불교적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이런 생명의 소중함을 점점 잊고 있다. 그동안 생명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며 속도전을 벌이는 데 골몰해왔다는 것. 문 시인은 “최근 끔찍한 범죄 등이 빈발하는 건 이런 가치관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돈과 에너지에 걸맞게 문화도 발전시켜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매체를 보면 사회에 괴기한 언어가 횡행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 그만큼 괴기한 생각이나 부당한 가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회일수록 시인은 사회의 가치관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문학은 자기가 사는 시대의 역사와 핵심을 투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한 시대의 시인은 그 시대에 부화뇌동해서 꿀을 따먹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불편하고 상처를 입더라도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직시하고 꿰뚫어야지요.”

문 시인은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풍에 대해 “다양하고 발랄한 시가 많이 나오는 건 좋지만 자신의 운명을 거는 절실한 태도와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형식만 새롭게 하거나 즉흥적인 감각을 남발하기보다는 심장에서 뿜어져나오는 언어로 시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시인은 지난 7~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시(詩)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초청돼 다녀왔다. 20개국 35명의 시인 앞에서 자신의 시 ‘꽃의 선언’을 낭송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칠레에서 연 ‘한국 문학의 밤’ 행사에도 참석해 자신의 시 ‘가을우체국’ 등을 들려줬다. 다음달에는 러시아에서 열리는 시낭송 행사에 참석한다. 문 시인은 “한국 시에 대한 현지인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며 “한국 문학이 당당히 세계 문학 속에서 어깨를 겨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