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러 스미스 "작품 핵심 이미지 애틋함·공포…균형 맞추는데 심혈 기울였죠"
“저는 부나 명예가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작품을 많은 이와 공유하기 위해 번역가가 됐습니다. 채식주의자가 그런 작품입니다. 해외에서 한강 씨를 뛰어난 작가로 인정한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작가 한강과 함께 받은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사진)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초청으로 이날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스미스가 지난달 17일 맨부커상 수상 이후 한국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미스는 “영국에서 많은 사람이 한강의 다른 작품을 읽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며 “다른 한국 소설에 새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며 ‘애틋함’과 ‘공포’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 균형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 이미지”라고 강조했다. 작가가 엄격하게 관리하면서도 무심하지 않은 느낌의 문체도 스미스가 꼽은 작품의 특징이다. 그는 “이런 특징에 주의를 기울여 이 작품을 번역했다”며 “원작의 문체에 젖어들어 흐름을 탈 때 번역본에서도 원작의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번 맨부커상 수상은 번역가와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 에이전트, 지원자 등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친 결과”라며 자세를 낮췄다.

“이번 수상작에 대한 제 번역은 완벽하지 않아요. 완벽함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번역가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제 한국어 실력이 이번 작품 번역을 계기로 더 좋아졌고 당시 번역에 오류가 있었다 해도 독자의 읽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뿐만 아니라 배수아 안도현 한유주 황정은 등 다수의 한국 작가 작품을 번역했거나 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문학의 잠재력에 대해 낙관했다. 스미스는 “문학은 성질이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느리다”면서도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여러 기관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널리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