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에서 에메랄드시티를 상징하는 초록 의상을 입은 배우들. 클립서비스 제공
뮤지컬 ‘위키드’에서 에메랄드시티를 상징하는 초록 의상을 입은 배우들. 클립서비스 제공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금발 마녀 글린다가 사실은 ‘허영심 많은 야심가’라는 걸 드러내는 버블 드레스(위키드), 총살당하기 직전 당당한 모습으로 처형대에 등장하는 비운의 무희 마타하리의 빨간 드레스(마타하리),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잔혹한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보라색 가죽 코트(스위니 토드),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의 존재론적 숙명을 표현하는 의상(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의상은 주인공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이들의 감정과 관계까지도 표현한다. 미국 작가 메이슨 쿨리가 “옷(clothes)은 말을 하지만 의상(costumes)은 줄거리를 말한다”고 한 이유다. 공연 의상 전문가들에게 뮤지컬 의상에 숨은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달 12일부터 8월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위키드’는 화려한 의상 등 휘황찬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작품에는 약 350벌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모든 장면에서 단 한 번도 의상이 겹치지 않는다. 사용한 원단만 7000종이 넘는다. 공식적인 의상 제작비는 40억원.

무게 20㎏의 드레스
무게 20㎏의 드레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고 했던가. 글린다가 버블 머신을 타고 내려올 때 입는 푸른빛 버블 드레스의 무게는 무려 20㎏이다. 촘촘한 비즈 장식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져 제작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또 다른 볼거리는 초록마녀 엘파바가 2막에 입고 나오는 검은 드레스다. 안현주 의상총감독은 “마녀 의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지구의 지층’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360겹의 서로 다른 소재와 색깔의 레이어를 모두 수작업으로 겹쳐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비싼 의상은 모리블 학장의 붉은 의상이다. 한 벌 제작비가 3000만원에 달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마타하리’
뮤지컬 ‘마타하리’
오는 12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하는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마타하리가 주인공이다. 한정임 디자이너는 “마타하리의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외국 헌책방까지 뒤지며 자료를 모았다”며 “시대적 배경이 1차 세계대전 직전 동양풍의 신비스러움과 화려함을 표현한 ‘벨 에포크’ 시대란 점을 살려 의상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마타하리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인 처형대에 올라가며 화려한 빨간 드레스를 입는다. 한 디자이너는 “마타하리는 자신을 이용한 남성들 앞에서 끝까지 당당한 모습으로 처형대에 오른다”며 “빨간 드레스는 그의 열정과 함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한 여성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의상”이라고 했다.

21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스위니 토드’는 살인마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광기 어린 복수극을 그린다. 음산한 분위기에 걸맞게 토드는 보랏빛 가죽 외투를 입고 등장한다. 조문수 의상디자이너는 “찢기고 멍든 영혼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며 “보라색은 멍든 몸, 가죽은 찢긴 살가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상처를 동여맨다는 의미에서 거즈를 활용하고, 닳을 대로 닳은 인생들을 표현하기 위해 새 옷에 때를 묻히고, 낡아 보이는 효과를 냈다.

17일부터 8월2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 오르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꼽추 의상이 핵심이다. 콰지모도의 착한 마음씨와 대조되는 추악한 외모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곱사등이 달린 콰지모도의 의상 무게는 10㎏. 원래 의상은 철제로 된 틀을 지게처럼 지고 있어야 해 더 무거웠다. 무거운 의상을 ‘짊어진’ 데다 공연 내내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절며 노래하다 보니 배우들의 허리 부상이 이어졌다. 철제 틀 대신 솜이 들어간 의상으로 교체한 이유다.

2013년 국내 라이선스 공연 당시 의상을 제작한 한 디자이너는 “솜이 들어가 무게는 한층 가벼워졌지만 통풍이 되지 않아 배우들이 땀을 비 오듯 흘렸다”며 “무게를 던 대신 ‘더위’를 얻었으니 여전히 배우가 고생해야 하는 배역”이라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