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고은·박완서가 이런 작품도? 그들의 '괴작' 엿보는 재미
책은 인류의 삶을 과거와 이어주는 기억의 박물관이다. “책은 젊은이에게는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유할 때는 지식이 되고 가난할 때는 위로가 된다”는 키케로의 말이 아니어도 모든 책에는 나름의 쓰임새와 독자적인 운명이 있음직하다.

‘책의 운명’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헤아려보는 일은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의 몫이다. 책에서 얻은 지혜를 배경지식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다. 모든 지식이 빠르게 해체되고 재편되는 오늘날의 사회 환경 속에서는 그 어떤 지식도 한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어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제는 새로웠던 일도 오늘은 결코 새롭지 않다. 그래서 매일 서점에는 새로운 책이 쌓이고, 이제 더 이상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온라인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아무리 뒤져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 바로 절판된 책들이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인 ‘절판 도서’를 나만이 읽는 재미를 놓치기는 힘들다.

[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고은·박완서가 이런 작품도? 그들의 '괴작' 엿보는 재미
《탐서의 즐거움》은 책과 사랑에 빠진 저자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며 서점 한구석에 놓여 있거나, 누군가의 서가에 꽂혀 있던 빛바랜 책들을 소환해 생명을 불어넣은 작업의 기록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심야책방》 《침대 밑의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책이 좀 많습니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등 다수의 책을 펴낸 저자의 문학적 소양과 깊이에 더해 헌책방 운영을 업으로 삼고 있는 터라 글의 내용에 무게가 더해진다. 글이 간결하고 명쾌해서 쉽게 읽힌다.

저자가 찾아낸 책들의 면면을 보면, 유명 작가의 책인데도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 책들이 있다. 팔리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드러내고 싶지 않아 작가가 숨겨놨다고 하는 편이 맞을 책들도 있다. 이른바 ‘망작(망한 작품)’ ‘괴작(괴이한 작품)’이라고 이름 붙인 책들도 있다.

박완서가 생애 마지막 전집에서 제외한 소설 《욕망의 응달》, 고은 시인의 프로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일식》이란 소설도 있다. 또 지금의 김영하를 떠올린다면 상상하기 힘든 그의 첫 소설 《무협 학생운동》도 작가의 공식적인 작품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다. 책들엔 과연 이 작가들이 썼을까 싶을 정도로 기이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작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래서 더욱 매혹될 듯하다.

책의 역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전자논문 프로젝트 ‘구텐베르크-E’의 기획자)은 현대인의 고민 해결을 지적 유산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살리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가지만 책은 살아남는다. 절판된 책들의 다종다양한 과거를 회상하는 즐거움을 《탐서의 즐거움》을 통해 누려보자. (윤성근 지음, 모요사, 1만5000원)

이은각 < 정독도서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