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미 문학거장의 '토크 콘서트'…촌철살인 속 빛나는 유머감각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고독의 크기입니다. 그럼에도 억압과 약탈과 자포자기에 맞선 우리의 대답은 삶입니다. 홍수나 전염병, 굶주림과 대재앙, 심지어 몇 세기에 걸친 끊임없는 전쟁도 죽음에 맞서 좀처럼 죽지 않는 삶의 이점을 축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이렇게 연설했다. 남미가 쿠데타와 학살 등으로 얼룩져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희망을 갖고 시련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미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오늘날 난민, 굶주림, 전쟁, 자연재해 같은 비극에 시달리는 곳이 남미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는 재치 있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이야기꾼으로 유명하던 마르케스의 연설문과 강연록을 묶은 책이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한 신문사의 로마 특파원으로 일할 때 콜롬비아의 부패와 장기 집권 음모 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이후 신변의 위협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반평생을 외국에서 떠돌았다. 마르케스는 외국에서 부정부패를 더 날카롭게 비판하며 조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드는 일에 헌신했다.

곳곳에 스며든 저자의 유머 감각이 눈에 띈다. 저자는 수많은 연설을 했지만 항상 “연설은 인류가 처한 곤경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1970년 베네수엘라에서는 연단에 올라 “(이 자리에 오지 않기 위해) 병에 걸리려고 했고, 폐렴에 걸리는 방법도 찾았으며, 이발사가 목을 자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이발소에도 갔고…(후략)”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재밌는 강연을 듣는 듯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올곧은 신념을 발견할 수 있다. 1986년 멕시코에서 그는 “지구에서 인간 생명을 보존하는 데 드는 비용이 핵이라는 골칫거리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저렴하다”며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6년 콜롬비아에서는 “여러분 각자가 항상 배낭에 책 한 권을 넣고 다닌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