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책 많이 읽고 어두운 방에 박혀 있는 공상가"

"강이는 이미 나를 뛰어넘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고 내 소설의 문장을 더 다듬으려고 노력하며 딸한테 많이 배웁니다"

17일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한강(46)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78) 작가는 "딸은 어렸을 적에 책을 많이 읽은 공상가였다"며 수상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 작가는 "무엇보다 한국문학이 한류처럼 문이 열려 딸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제 세계가 한국의 젊은 세대 작가들의 수준 높음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한 작가와의 일문일답.

-- 세계적 권위의 상을 받았다.

아버지로서의 소감은.

▲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자식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번에 큰 효도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 수상 후 통화는 했나.

▲ 우선 건강히 지내라고 했다.

더 좋은 글을 쓰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또 내가 동네 주민 한턱 낸다고 하니까 딸이 돈을 다 대준다며 한턱내라고 했다.

군수에게 군민회관에서 한턱내겠다고 했다.

-- 소설가로서 딸의 수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학동네, 민음사 등 큰 출판사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한국문학이 자랄 수 있었다.

특히 독자들이 읽어주고 것이 큰 힘이다.

우리 세대 때는 좋은 번역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문학번역원이나 정부에서도 힘을 기울여 번역자를 양성하고 이번에 좋은 번역자를 만나서 햇빛을 보게 된 듯하다.

--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무슨 말을 했나.

▲ 별다른 얘기는 할 새가 없었다.

다만 내가 '기대하냐?'고 했더니 딸이 '마음 비우고 계십시오' 하더라.(웃음).

-- 어려서 한 강씨은 어땠나. 성격 글쓰기 등

▲ 내성적이고 순한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지만 책은 많았다.

책 속에 묻혀 살고 책을 많이 읽었다.

자기 세계 속에서 살고 공상을 많이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면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자기 방에서 손자 누워 공상을 하곤 했다.

그것이 소설가를 만들어간 자양분이 된 것 같다.

특히 그때 당시에는 밥이 귀한 때라서 법대나 의대로 교통정리를 했다.

아내가 교통정리를 하지 않아서 삼남매가 모두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 평소 소설가 한승원으로서 어떤 영향을 줬나.

▲ 딸은 항상 소설을 숨어서 쓴다.

한번도 '읽어봐 주세요' 한 적이 없었다.

강이에게는 소설 소재를 잡으면 그 소재를 완전히 소화시켜 형상화하는 도전적인 의지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좋은 소설을 쓸 것으로 기대한다.

-- 평소 딸의 소설을 읽고 조언을 하는지.

▲ 자식이 소설을 쓰면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내 식으로 쓰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말을 아주 아낀다.

소설을 읽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재미 있더라' 그렇게만 말한다.

다른 제자들한테는 시시콜콜 얘기하는데 내 자식들한테는 말을 아낀다.

자기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 '채식주의자'는 어떤 소설인가.

▲ 어떤 새로운 신화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다.

누구의 세계도 흉내 내지 않고 저 혼자만의 세계를 가고 있다.

다루는 인간이라는 문제, 딸이 주장하는 소설은 대답을 하는 게 아니고 독자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좋다.

-- 딸의 전반적인 작품세게를 평가한다면.

▲ 그의 세계가 신화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답이라기 보다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적인 생명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꾸준히 소설가로서 발전해 나가리라고 생각한다.

--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80년 5월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영향인가.

▲ 그 소설은 고발소설이 아니다.

어려서 내가 광주를 다녀오면 당시 5·18 관련 사진집을 갖고 가서 보여주곤 했다.

당시에는 몰래 숨어서 팔고 사는 것을 구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사진을 보고 영향을 받은 듯하다.

-- 이번 수상이 한국문학사에 갖는 의미는.

▲ 한류 바람이 부는 것처럼 이제 문학의 문도 열린 것 같다.

앞으로 더 한국문학이 세계에 알려져 수없이 많은 일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이제 세계가 한국문학의 귀함에 대해, 수준 높음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빛을 못 보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도 아마도 한국을 아는 번역자들이 많이 덤벼들어 한국문학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수상이 그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 딸에게 바라는 점은

▲ 건강하게 제 길을 쉼 없이 잘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작가를 후원해주는 보이지 않는 후원자가 독자들이다.

한국문학을 사랑한다면 서점을 부지런히 들리고, 인터넷을 통해 책을 많이 사주길 바란다.

요즘 인터넷 세상에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장흥연합뉴스) 김재선 기자 kj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