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맨부커상 수상으로 재도약 발판 마련
"상에 만족하지 말고 세계문학 속으로 뻗어나가야"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국 문단이 재도약의 계기를 맞게 됐다.

특히 한국 문학의 숙원인 노벨 문학상 수상에 한발짝 다가섰음을 확인함은 물론 번역이라는 '날개'를 달면 얼마든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실증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문단 내부적으로는 작년 6월 제기된 신경숙 표절 논란을 떨쳐내고 독자들의 신뢰를 되찾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 신경숙이 흔든 문단, 한강이 제자리에 돌려놓다
작년 6월 소설가 이응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일본의 대표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소설 '우국'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응준이 제기한 표절 의혹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넘어서 돈과 일부 문학공동체 권력에 사로잡힌 우리 문학계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한 문인이 고심 끝에 한 폭로는 한국 문학계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문단을 주도하던 출판사였던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는 '3대 문학권력'으로 지목당해 비판받았고, 문단 내에서도 거센 자성의 바람이 불었다.

외신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표절 논란을 너도나도 대서특필했고, 독자들은 철저하게 한국 작가들을 외면했다.

일례로 신경숙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는 표절 논란 이후 판매량이 무려 47%나 줄기도 했다.

그러나 한강이 지난 3월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 후보에 한국인 최초로 오르면서 한국 문학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책 판매량에서부터 드러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강의 맨부커상 후보 소식이 집중적으로 전해진 지난달부터 이번달 15일까지 소설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나 늘었다.

또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후보작 선정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 무려 4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강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해 수상을 이끈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체식주의자'는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며 "이는 독자들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좋은 문학작품이 있으면 꾸준히 볼 것이라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 맨부커상으로 재기 계기 맞은 한국 문단
한국 문단이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신경숙 충격에서 벗어나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예상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성곤 원장은 "한강의 수상을 대단히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안도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작년 신경숙 사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학의 문제로 바라봤다"며 "전반적으로 한국 문학의 이미지가 나빠졌는데 한강의 수상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상쇄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강이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뒤 다른 출판사들이 한국 작가들을 찾아오고 있다"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기본적으로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한국 작가들이 뒤늦게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동안 선배 작가들이 일궈놓은 터전 위에서 한강이 열매를 맺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이렇게 좋은 성과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며 "외형적인 화려함은 없었지만 프랑스 등 유럽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계속해서 높아진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한강의 수상에는 선배들의 노력이 컸다"며 "한국 작가 집단의 전체적인 성장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경숙 사태 당시 논란의 핵심에 섰던 출판사 창비 역시 같은 생각이다.

표절 논란이 일었던 '전설'과 이번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모두 창비가 펴낸 책들이다.

창비의 염종선 편집이사는 "표면적으로 부침이 있었지만 한국 문학은 꾸준한 저력이 있었다"며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조명을 받은 것이 늦은 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시장에서 책이 안 팔린다며 비관적인 분들이 많은데 한국 문학은 실제로 그렇진 않다"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학성을 가진 우수한 작가들이 계속해서 소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상 집착 벗어나야"…발전적 대안 필요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를 놓고 수차례 기대와 허탈함이 맛봐야 했던 국내 문학계는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노벨문학상이라는 지향점을 더욱 선명히 지닐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상에 집착하는 태도보다는 보다 발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시사교양지 뉴요커는 지난 1월 '정부의 강한 지원으로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칼럼을 통해 문학에 관심이 없으면서 문학상 수상만을 바라는 한국의 세태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면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외형에 열광하는 성향이다"라며 "수상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이를 세계문학으로 뻗어나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한강 외에도 다른 작가들이 받춰져야 한다"며 "그래야 한국문학이 자유롭게 세계문학 독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구용 대표 역시 "이번 수상으로 한국 시장에서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 작품들을 읽었으면 한다"며 "한강의 수상은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후배 작가들에게 길을 터준 셈이다.

이들이 용기를 얻어 좋은 작품을 많이 쓴다면 기대할 일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viv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