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바위산이 시기리아 록이다.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뒤에 보이는 바위산이 시기리아 록이다.
'인도양의 진주' 스리랑카짙푸른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여행의 향기] 깨달음으로 가는 길…재촉하지 마세요…여기는 스리랑카!
섬의 생김새가 인도 대륙에서 떨어지는 눈물처럼 생겼다고 해서 '대륙의 눈물'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스리랑카는 때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가 아름다운 곳이다. 번성했던 고대 불교왕국의 문화유산은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왜 수많은 여행객들이 스리랑카를 '인도양의 진주'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스리랑카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놀라운 매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황금해안으로 불린 풍요로운 섬
시기리아 록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벽길
시기리아 록 정상으로 올라가는 암벽길
스리랑카 남서해안에는 4월부터 10월에 걸쳐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때가 되면 망망한 인도양에서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에서 부서진다. 옛날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앞다퉈 바다를 건너던 시절, 이 바람은 그들을 동쪽의 낙원인 스리랑카로 실어다 주었다. 시나몬 향기와 영원한 빛을 발하는 갖가지 보석, 야자수의 짙은 녹색으로 치장한 새하얀 모래사장. 이 섬은 유럽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요로운 세계였다. 섬은 전설이 됐고 사람들은 이 섬을 동경했다. 동경은 탐욕으로 변질됐고, 남서해안은 탐욕자들에게 ‘황금해안’이라 불렸다. ‘풍요로운 부(富)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에서다. 항구가 생기고 성이 세워지면서 해안은 다른 나라를 향한 창구로서 크게 변모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서해안의 매력은 수도 콜롬보의 포트 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번잡한 시가지를 등지고 식민지 시절의 유산인 몇 문의 대포 옆에 앉아서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아, 이곳이 인도양이구나!”, “바다의 실크로드가 저 거침없는 파도를 타고 이곳으로 이어졌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어쩌다 말이라도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에 앉아 있게 되고 만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 근교 남쪽 해변에 있는 호텔 라비니아로 간다. 한 소설가는 이렇게 썼다. “…오후에는 물론 마운트 라비니아로 가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오찬을 즐기고 석양을 바라보며 이 호텔에 얽힌 전설의 여인을 생각하고…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테라스에서는 장엄한 바다의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예전에 총독의 별장으로 세워진 이 호텔이 얼마나 멋진가를.”
바다 위 말뚝에 올라 낚시를 하는 모습
바다 위 말뚝에 올라 낚시를 하는 모습
누드비치와 히피로 유명했던 히카두아

아름다운 해변은 남쪽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밴토타’나 ‘히카두아’ 해변은 개발이 돼 멋들어진 리조트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갈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식민지 시절의 성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해변은 한가로운 어촌에 자리하고 있다. 계절적으로 파도가 일어 바다 색은 그리 곱지 않지만 어느 곳을 가나 해맑은 웃음을 마주하며 남국의 느긋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히카두아는 10여년 전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까지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조트 지역이었다. 해양 스포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모두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 리조트부터 싸구려 게스트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한때는 인도의 ‘고아’처럼 누드 비치가 있어서 히피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기도 했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자유로움 그 자체가 이 지역으로 젊은이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제 히피들은 사라졌지만 인도양에서 거침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벗삼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거나, 통나무배를 타고 바다 반대편의 밀림 속 수로를 누비고 다니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순박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 히카두아다.

‘악마의 가면’으로 유명한 암발랑고다

새벽에 일어나 히카두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다앙 두어’라는 조그마한 어촌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남쪽에서 올라오면서 눈여겨봐둔 곳이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카트마란’이라 부르는 수많은 어선들이 밤새 고기잡이를 마치고 속속 포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잡아온 크고 작은 고기를 퍼날라 땅바닥에 놓는다. 꽁치 비슷하게 생긴 것을 ‘우를라’라 했고, 돔처럼 생긴 것을 ‘파라피시’라 부른다. 고등어와 다랑어도 보인다.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 감시대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 감시대
여기저기 펼쳐 놓은 생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 금세 시장이 형성된다. 즉석 경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제법 큰 다랑어 한 마리가 우리 돈 1000원쯤에 거래되고 있다. 생선들은 잠깐 사이에 다 팔려 나간다. 그러면 또 다른 어선이 들어와 고기들을 내놓는다. 이래저래 북새통이다. 사고 파는 사람들 모두가 흡족한 표정이고, 비록 사지는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구경꾼들도 있다. 이른 아침 생기가 넘치는 현장이다. 이제 어부들은 휴식을 취하고 나서 석양 녘이 되면 다시 카트마란을 타고 꿈을 낚으러 바다로 나갈 것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찾을 만한 곳이 있다. 역시 서쪽 해안의 작은 어촌인 ‘암발랑고다’라는 곳이다. 암발랑고다는 ‘악마의 가면’으로 유명하다. 대표적 토산품으로 인기를 끌고있는 이 가면은 악마보다 더 무서운 모습으로 만들어 악마가 놀라 도망치게 하기 위해 제작됐다. 이곳의 악마들은 사람들처럼 순진한 것일까. 마을 도처에 있는 공방을 기웃거려 보면서 이들의 순박함을 실감한다.

이 밖에도 남쪽에는 ‘아한가마’ ‘탕갈라’ ‘함반토타’ 등의 여러 해변들이 손짓하고 있다. 소금 산지로 알려진 함반토타는 ‘이슬람의 항구’라는 뜻으로 14세기께 아랍 상인들이 해양 실크로드를 타고 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문을 연 항구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아한가마의 ‘스틸트 피싱’이다. 바다에 세워진 말뚝 하나를 붙잡고 올라서서 고기를 낚는 것인데 아름다운 바다와 잘 어울리는 풍경인 데다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어서 인기가 높다.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공짜로 즐기던 것들인데 이제는 체험은 물론이고 사진만 찍어도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어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미힌탈레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의 신성한 보리수 앞 순례자들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의 신성한 보리수 앞 순례자들
스리랑카는 기원전 236년 인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에 의해 불교가 전해지면서 찬란한 불교 문화를 피우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의 불교 유적들이 도처에서 지난날의 영화를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누와라(캔디)를 잇는 일대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불교 유적군이 몰려 있다. 후대 사가들은 이 지역을 일컬어 ‘문화 삼각지대’라 부른다.

아누라다푸라 사원 마당에 모인 스님과 학생들
아누라다푸라 사원 마당에 모인 스님과 학생들
아누라다푸라는 약 2500년 전에 스리랑카 최대 도시였다. 번성했던 문명을 상징이라도 하듯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는 탑은 하늘을 향해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수많은 조각은 어느 것이나 부처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 기반을 다진 불교, 흔히 소승불교라고 부르는 상좌부 불교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남인도에서 쳐들어온 침입자와의 거듭된 전쟁 끝에 1400여년에 걸친 영화의 막을 내리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처에서 지난날의 영광을 느껴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누라다푸라 유적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는 스리랑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콜롬보 캘러니아 사원에서 참배를 마친 신랑과 신부
콜롬보 캘러니아 사원에서 참배를 마친 신랑과 신부
아누라다푸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성지 미힌탈레가 있다.

1934년 정글 속에서 잠자고 있던 유적군이 발굴된 이래 스리랑카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의 하나로 여겨지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양 무렵에 기도하기 위해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산정의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서서 광활하게 펼쳐지는 불국의 땅을 바라볼 때의 기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늘 향해 수직으로 솟아 있는 시기리아 록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걸쳐 남인도의 초라 왕조가 대군을 보내 신할라 왕조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를 정복하자 신할라 왕조는 어쩔 수 없이 수도를 폴론나루와로 옮겼다. 이때부터 폴론나루와 시대가 열리고 태국이나 미얀마 등에서 승려들이 찾아올 만큼 불교 도시로 번영을 누려 스리랑카 불교 문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정글 속 곳곳에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왕궁이나 거대한 불탑, 불상들이 그 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애석하게도 이 폴론나루와 시대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13세기 후반에 다시 인도 초라 왕조의 침략을 받아 이 섬의 중앙부로 쫓겨가게 되고, 폴론나루와의 영광은 점차 폐허의 도시가 돼 정글 속에 묻혔다.

담불라 사원 석굴 천장에 그려져 있는 벽화와 불상들
담불라 사원 석굴 천장에 그려져 있는 벽화와 불상들
이 문화 삼각지대에서 가장 독특한 곳은 시기리아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의 요새 ‘시기리아 록’이다. 주위의 숲과 상당히 대조적인 적갈색의 이 바위산은 높이가 195m로 하늘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는 기막힌 모양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바위산 꼭대기에 5세기 중엽에 화려한 왕궁을 짓고 살았던 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억지로 왕좌에 오른 카샤파 왕자는 동생 목갈라하나의 보복이 두려워 이 요새에 성을 쌓았다. 경사가 급한 바위를 사자 발톱 모양의 돌계단을 거쳐 거의 기다시피 하며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숱한 의문에 싸여 있을 뿐인 궁궐의 흔적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담불라의 석굴사원 역시 갑자기 우뚝 솟은 듯한 거대한 적갈색의 바위산에 있다. 이 절은 기원전 1세기 신할라 왕인 발라감 바후 왕이 지었다. 왕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타밀 군의 침략에 밀려 이곳으로 피신한 뒤 왕권 회복을 꾀했다고 해서 감사의 뜻을 모아 이 사원을 짓게 했다고 한다. 벽화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바랬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극채색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처님 치아 사리 모신 불치사
불치사 앞 코끼리
불치사 앞 코끼리
문화 삼각지대의 종점이며 스리랑카 마지막 왕조의 도읍이라 할 수 있는 누와라는 ‘도시’라는 뜻인데 지금은 ‘캔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스리랑카 지배를 시작한 영국은 스리랑카의 종교나 전통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전까지 수도였던 누와라를 캔디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갈비하라 사원에 있는 부처의 열반상
갈비하라 사원에 있는 부처의 열반상
누와라에는 식민지 세월을 이겨낸 달라다말리가와라는 사원이 있다. 일명 ‘불치사(佛齒寺)’라 불리는 이 절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모신 곳이다. 불치를 유달리 귀하게 생각하는 스리랑카인들은 이곳 참배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스리랑카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이는 여정에 따라야 하는 곳이다. 이 여정은 스스로의 발견을 위한 여행이고 삶을 찾는 길이다. 곳곳에 스며 있는 상좌부 불교의 자취. 가냘퍼 보이지만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꿋꿋이 지켜온 문화. 그 모든 문화의 내음을 듬뿍 담아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고 있다.

콜롬보(스리랑카)=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여행 정보

대한항공이 인천~콜롬보 직항노선을 운항한다. 한 달 이내의 관광객들에게는 전자 비자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발급받지 않아도 현지에 도착해 랜딩비자를 신청하면 된다. 비용은 40달러. 스리랑카는 과거 영국 식민 지배를 받아서 영어가 잘 통하고, 관광지의 숙소들이 리조트 형식으로 잘 정돈돼 있다. 숙소는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스리랑카 화폐 단위는 ‘루피’다. 콜롬보 공항에 도착해 환전소에서 교환하면 된다. 시간은 한국보다 3시간30분 늦다. 연평균 기온은 27도이며, 5~9월이 우기다.

팁 문화가 일반화돼 있으니 사전에 1달러짜리나 루피 잔돈을 준비하는 게 좋다. 사원이나 유적지에 들어갈 때마다 신을 벗어야 한다. 신발은 신고 벗기 편리한 것을 준비하는 게 좋다. 스리랑카 거리에서 흔하게 접하는 전통음식은 ‘호퍼’다.

밀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섞어 반죽해 얇게 구워낸 뒤 달걀 한 개를 가운데 떨어뜨려 먹는다. 밀가루빵 로티를 면처럼 잘라내 카레 등과 섞어 먹는 ‘코투’ 역시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스리랑카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