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루살카’.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루살카’.
무대 중간 얇은 반투명 가림막 뒤에 푸른 호수 물결이 넘실댄다. 은은한 달빛이 물에 어리고, 물의 정령들이 둥둥 떠다닌다. 물속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반투명 막 앞에 서 있는 ‘물의 요정’ 루살카. 왕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의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를 부른다. “달님, 잠깐 멈추시어 내 사랑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줄래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8일 개막한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루살카’는 체코 특유의 서정성과 신비로움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뛰어난 영상미와 무대 디자인으로 루살카가 사는 숲속과 호수, 그 위에 조용히 관망하듯 떠 있는 달까지 환상적으로 표현해냈다.

‘루살카’가 국내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리아 ‘달에게 부치는 노래’는 유명하지만 전막 공연은 오페라 애호가들도 접해보지 못한 드보르자크 작품이다. 물의 정령과 왕자 사이의 사랑과 배신 이야기로 ‘체코판 인어공주’로도 불린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장이 지난해 취임 이후 처음 연출을 맡았다. 박동우(무대) 김용걸(안무) 조문수(의상) 구운영(조명) 등 국내 전문가로 제작진을 짰다.

공연은 1막과 2막의 극명한 색깔 대비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등 세련된 무대를 선보였다. 1막에서는 파란색으로 신성한 자연을, 2막에선 붉은색으로 배신과 파괴를 일삼는 인간 문명을 표현했다. 붉은색 큰 단상에서 춤추는 무용가들의 모습에선 향락을 즐기던 인간들이 언젠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파격적인 장면도 눈에 띄었다. 루살카는 외국 공주의 유혹에 이끌리는 왕자를 단상 아래에서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이때 단상에선 남녀의 음란한 파티가 벌어진다. 서로 몸을 맞대고 격렬히 탐닉한다. 오페라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를 통해 루살카의 애절한 정신적 사랑보다 퇴폐적인 육체 행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인간의 모습이 부각된다.

원작의 한계일까. 이런 시도에도 단조로운 구성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친숙한 인어공주 이야기가 색다르고 독특한 해석 없이 이어져 극이 흘러갈수록 긴장감과 흥미가 떨어졌다.

루살카와 왕자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 장면이 지나치게 짧다. 1막이 끝나갈 때 왕자가 등장하고, 2막으로 넘어가서는 곧바로 외국 공주에게 흔들린다. 루살카가 인간이 되지 못하는 슬픔과 배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장면은 잦고 길다.

소프라노 서선영은 폭발적인 성량으로 루살카의 심정을 잘 표현했음에도 극의 흐름이 늘어졌다. 왕자 역을 맡은 권재희의 성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쉬웠다. 다음달 1일까지, 1만~15만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