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인텔의 앤디 그로브, 애플의 스티브 잡스. 현대 첨단기술 업계의 1세대 최고 스타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 기업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고 높은 회사로 이끌었으며, 혁신적인 제품으로 인류의 삶을 바꿔놨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오류가 없는 사람은 없었다. 전략과 실행에서 모두 실수를 저질렀다. 철저히 실패한 제품이나 성과가 저조한 제품을 옹호하거나 회사의 역량을 살리지 못하고 전략적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모두 회사를 불법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미국 법무부, 연방거래위원회와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혹독한 노동관과 지나친 개성으로 조직 운영에 문제점을 드러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뛰어난 학습 능력이 있었다. 역사는 물론 전략과 조직도 열심히 공부했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략의 대가이자 조직의 유능한 리더가 됐다. 회사의 장단기 목표를 세워 조직이 성공하도록 이끌었으며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해 회사가 장기간 경쟁 우위를 점하도록 했다.

개인적 배경과 성향이 전혀 달랐던 이들의 성공적인 경영 전략과 원칙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게이츠, 그로브, 잡스의 시대나 첨단기술 업계에서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전략의 원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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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분야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요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마이클 쿠수마노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략의 원칙》에서 이런 궁금증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답을 제시한다. 게이츠와 그로브, 잡스를 정기적으로 인터뷰하고, 일정 기간 회사 경영에 참여하며 25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의 경영 전략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고 고찰했다.

저자들은 전략과 실행에 대한 이들의 공통된 접근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원칙은 ‘앞을 내다보고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짚어 보라’는 것이다.

게이츠는 IBM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마련해 달라고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곧 IBM의 제안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든 PC 앱(응용프로그램)용 플랫폼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앤디 그로브
앤디 그로브
그로브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컴퓨터산업을 재편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파악했다. 애플은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란 아이디어를 처음 창안한 기업은 아니었지만 잡스는 애플 리더로는 유일하게 GUI의 혁명적 잠재성을 알아봤다. 이들은 이런 비전을 현실화할 전략을 개발하고 실행했다. 저자들은 “위대한 전략가가 되려면 오늘의 부담감과 내일에 대한 압박감에서 한걸음 물러나 미래를 향해 앞을 내다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그런 뒤에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할지 되짚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 번째 원칙은 ‘크게 베팅하되 회사의 존립을 위협하지는 말라’다. 게이츠는 윈도를 개발해 당시 최강 기업 IBM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로 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그로브는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단독 공급자가 되기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잡스는 매킨토시의 미래를 걸고 맥의 파워 PC 칩을 인텔의 기술로 대체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들은 과감하게 베팅했지만 회사를 파멸의 위기에 빠뜨리지는 않았다. 게이츠는 다른 사업 부문들이 탄탄해져 회사가 도산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IBM과의 결별을 미뤘다. 그로브는 설비투자를 서서히 단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위험성을 줄였다. 잡스도 회사가 맞을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베팅 시기를 조정했다.

세 번째 원칙은 ‘제품만 만들지 말고 플랫폼과 생태계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기반 기술이나 네트워크 효과를 특징으로 하는 플랫폼 시장은 사용자와 파트너의 보완제품과 서비스 수가 증가하면서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이와 관련된 마케팅, 영업, 유통에 종사하는 파트너의 광대한 생태계를 구축한다. 게이츠와 그로브는 핵심적인 결정을 내릴 때 제품보다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협력사의 강력한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성공을 독려했으며, 경쟁사에서 얻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특징을 받아들여 플랫폼을 발전시켰다.

이 세 가지 원칙이 게이츠, 그로브, 잡스가 최고의 성공을 거두는 데 기여한 기초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면 나머지 두 가지 원칙은 전술적·조직적 수준의 실행 지침이다. ‘유도 같은 지렛대 원리, 스모 같은 힘을 활용하라’는 원칙은 언제 상대방과 협력하고 경쟁자들의 강점을 포용해야 하는지, 언제 자신의 힘을 휘둘러야 하는지 잘 판단해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닻을 바탕으로 조직을 구성하라’는 리더의 독특한 능력과 장단점, 비즈니스 통찰을 바탕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확장하라는 것이다.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그로브는 공학적 엄밀함, 잡스는 디자인에 대한 집착으로 회사를 세웠고 그들이 고용한 사람과 자신이 영감을 준 문화와 시스템, 가치를 통해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보완했다.

저자들은 MBA에서 이름 높은 교수답게 세 리더와 세 회사의 다양한 일화 및 사례를 적절하게 들며 경영과 관련해 얻을 수 있는 광범위한 교훈을 끄집어내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세 리더의 잘못과 실수도 낱낱이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이 승계와 후계자 문제다. 저자들은 “게이츠, 그로브, 잡스는 각자의 회사가 미래에 어떤 리더를 필요로 할지 예측하는 데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당신을 보완하는 임원들은 당신의 성공에 필수적일지 모르지만, 당신의 리더십을 대체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