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신여성 이미지로 관객 사로잡겠다"
1900년대 초 한 시골 마을. 퓨전 한복을 입은 여성이 도도하게 걷고 있다. 삐삐머리를 하고 선글라스까지 썼다. 마치 국내 창작 뮤지컬 속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다. 톡톡 튀는 여성은 작품의 여주인공 ‘아디나’. 다음달 4~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서울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에서 이런 모습의 아디나가 등장한다.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소프라노 홍혜란(35·사진)이 이 역할을 맡았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디나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원작 속 아디나에 한국 역사 속 신여성의 모습까지 더해 보여주고 싶어요. 발랄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겠습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미국 줄리아드음대 대학원을 나왔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세계 최고 오페라단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했다. 국내에서 음악회 이외에 오페라 전막 공연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작으로 ‘사랑의 묘약’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희극이라 끌렸어요. 아디나는 순박한 청년 네모리노가 짝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처음에는 감정 표현이 서툰 네모리노를 쌀쌀맞게 대하지만 진실한 그의 마음을 깨닫고는 받아들입니다. 평소 제 목소리나 캐릭터와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사랑에 눈뜨게 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아디나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무대의 배경은 구한말로 바뀐다. 그는 원작과 크게 다른 만큼 관객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 실제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합니다. 오페라는 몸짓이 커 연기한다는 느낌이 확연히 드러나는 편인데 이번 무대에선 일상에서 얘기하듯 노래하겠습니다.”

아디나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숙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은 네모리노다. 그의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극 중에서 가장 많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 명곡이다. 이 때문에 네모리노에 비해 아디나의 비중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홍혜란은 “네모리노와 대등하게 보일 수 있도록 깊은 인상을 남기겠다”며 “사랑을 알지 못했던 아디나가 아리아 ‘받으세요! 당신은 자유로워요’를 눈여겨봐 달라”고 말했다.

홍혜란은 지난달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일하며 성악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년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내년엔 유럽 무대로 진출할 예정이다. “독일로 거주지를 옮기고 유럽에서 활동하려던 차에 교수 제안을 받게 돼 한국에 왔습니다. 과 후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죠. 이를 잘 마무리하고 유럽 무대에서 폭넓게 활동할 생각입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