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은밀히 공유되는 다수의 편견…소문을 경계하라
“일본의사협회가 코스모 석유 화재로 유해물질이 구름에 붙어 비와 함께 내린다는 예보를 팩스로 하달했다. 따라서 몸에 빗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연락을 가급적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전파해주길 바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많은 일본인은 이런 이메일을 받았다. 유해물질이 섞인 비에 대한 소문은 ‘공장 근무자에게서 들은 정보’, ‘소방당국의 연락’ 등 확인되지 않은 근거가 더해지며 더 확산됐다.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도되고 이를 부인하는 정보도 확산되며 괴담 같은 이 소문은 며칠 만에 자취를 감췄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처럼 위기 상황에서 소문은 더 활성화하고 많아진다. 당국이 부적절한 정보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서면 소문이 더 급격히 퍼지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발달로 입소문의 위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본 사회학자인 마츠다 미사 주오대 교수는 《소문의 시대》에서 소문의 양상과 대처방법에 대해 분석한다. 저자는 “소문은 인류와 함께한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며 “소문의 본질을 꿰뚫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소문을 활용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문은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라고 시작하는 비밀이야기의 공유는 유대를 강화한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괜찮은 정보를 제공할 의무감을 느낀다. 저자는 “사람들은 ‘친구의 친구가 체험한’ 이야기가 전형적인 도시괴담이라고 할지라도 굳이 반박하지 않는다”며 “소문은 사실성보다는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에는 과거의 소문이 계속 남는다. 소문이 처음 퍼졌을 때 당사자가 부인해 한시적으로 잠잠해질지라도, 이런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나중에 검색하고 또 수면위로 끄집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인터넷 시대에는 기록이 영원히 남을 뿐만 아니라 맥락에서 잘라낸 일부분이 마치 전체인 양 나타나거나 아예 의도적으로 전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오도될 위험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을 예로 들며 왜곡된 소문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지적한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극물을 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수 이방인에 대한 다수의 불안감은 인종 말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언제 어디서든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며 “소문으로 표출된 사회적 합의 속에 숨겨 있는 다수의 편견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