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바비에의 ‘질-생명게임’
질 바비에의 ‘질-생명게임’
예술가는 한 가지 소재로 얼마나 다양한 작품을 낼 수 있을까. 남태평양 바누아투공화국 출신 프랑스 조형예술가 질 바비에(51)는 “모든 작업과정은 ‘그리고’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경험 하나를 가지고도 끝없이 창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그의 작업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13일부터 7월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에코시스템:질 바비에’ 전이다. 한·프랑스 수교 130년을 기념해 프랑스 마르세유의 프리시 라벨드메 현대미술센터와 공동으로 기획했다.

전시는 작가의 지난 30년간 작업을 조망한다. 회화, 조각, 드로잉과 설치 작품 등 100여점이 나왔다. 전시장엔 시작이나 끝 지점이 따로 없다. 관람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서다.

전시 주된 테마는 ‘생명게임(Game of life)’이다. 1970년대 영국 수학자 존 콘웨이가 소개한 용어다. 세포를 임의로 배열해 놓으면 자가증식을 하며 나름의 체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12일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바비에는 “전시 이름인 ‘에코시스템(생태계)’은 작가가 창조한 규칙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세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소재를 여러 작품에서 반복해 사용했다. 세포가 변이와 증식을 거듭하듯 서로 다른 작품이 이어지며 새로운 맥락을 이룬다. 속이 빈 말풍선을 사용한 설치작품 ‘다변증’과 회화 ‘리본맨’이 그런 예다. ‘다변증’은 작가 두상에서 거품처럼 쏟아지는 말풍선 형상으로 의미없는 말의 범람을 꼬집는다. ‘리본맨’은 같은 말풍선으로 영웅의 형상을 만들어 우스꽝스러운 반(反)영웅을 표현했다.

‘머리’ 연작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두상을 주물로 떠서 조소 작품을 여럿 제작했다. 소재는 같지만 주제는 다르다. ‘바나나가 박힌 머리’는 대중의 머릿속에 주입된 상업광고를 상징한다. 분홍색과 노란색을 대비시켜 상업예술인 팝아트 분위기를 냈다. ‘조용한 남자’는 두상에 이끼, 버섯, 담쟁이 덩굴 등 식물을 엮었다. 초현실적인 작품이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보여준다.

바비에는 “이 세상은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한 가지 버전에 불과하다”며 “각 이미지의 연결성을 유추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02)3701-9500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