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하루 - 이성선(1941~2001)
오늘은 그냥
종일
꽃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나는 곁에 앉아
잘 못 마시는 술
혼자서
한 잔 따라놓고
꽃의 귀에
술을 붓듯이
입술로만 조금씩 마신다

술잔 속에
프리지어 얼굴 하나 눈 뜨는 하루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세계사 2000


바야흐로 4월은 꽃의 축제다. 꽃이 피면 저절로 몸에 생기가 돈다. 못 마시던 술이 생각나고 음악도 자꾸 듣게 된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거리마다 흐른다. 꽃처럼 흐른다. 시인은 잘 못 마시던 술 따라놓고 입술만 적시는 모양이다. 꽃이 와서 하루가 바뀐다. 술잔 속에 봄이 있는 듯하다. 술잔 같은 꽃송이마다 술을 따라 놓고, 햇볕을 쬐고 싶다. 복잡하고 실망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더라도, 꽃을 보고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오로지 지금의 평화만이 있을 것 같다.

이소연 < 시인 (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