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 씨, 시집 '모두…' 출간
1963년 등단해 올해로 시력(詩歷) 53년을 맞은 김종해 시인(75·사진)이 3년 만에 새 시집 《모두 허공이야》(북레시피)를 펴냈다. 시집에는 ‘허공’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첫 번째 수록작 ‘천년 석불을 보다’에서는 무거운 것들을 모두 내려놓은 사람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홀가분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괴로워하지 마라/그대 이생에서 몸 하나 가졌기 때문에/슬프고 기쁜 일 또한 그대 몫이다/그대 몸 하나를 버리고 이곳을 떠나면/슬프고 기쁜 일 또한 부질없으리’(‘천년 석불을 보다’ 중)

이처럼 달관의 자세를 지닌 시인은 소리내어 떨어지는 꽃잎처럼 자유롭게 낙하하고 싶다는 마음도 내보인다. ‘이제 비로소 보이는구나/봄날 하루 허공 속의 문자/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이생의 슬픈 일마저 내 가슴에서 떠나는구나’(‘모두 허공이야’ 중)

시집 2부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김종철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한국시인협회장을 맡아 열정적으로 일하던 동생은 2014년 췌장암으로 먼 길을 떠났다. ‘며칠 후면 한 사람이 하늘로 떠날 것’(‘호스피스 병동’ 중)이라며 동생과의 이별을 준비한 시인은 정제된 언어로 더욱 깊은 슬픔을 표현한다.

‘이승을 넘어서 아우가 이사를 했는데/걸어서 30분/이젠 내가 이승을 넘어/이웃에 이사온 아우에게 가 볼까/가서 아우에게 못다 한 술잔을 함께 나눌까’(‘아우가 이사를 했다’ 중)

시인이 말하는 허공은 허무가 아니다. 삶의 마디마디를 관조하는 시인의 원숙함이 돋보인다.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잠깐 사이 변하고 사라지는 것, 저 허공에 귀를 갖다 대고 그 울림을 듣고 싶다”는 시인으로서의 소박한 마음을 내비쳤다. “아직도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라며 “누구나 알아듣고 공명하는 그 깨침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노(老)시인의 소망이 공감을 자아낸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