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화필 잡는 100세 현역…"예술은 현재의 기록"
두 주먹을 불끈 쥐거나 손을 휘저으면서 그림을 설명한다. 색감에 대한 이야기부터 형상과 비형상의 세계까지 넘나든다. “예술은 ‘1+1=2’가 되는 게 아니라 합쳐져서 새로운 것을 낳는 ‘종합’”이란다. 아직도 목소리가 젊은이처럼 쩡쩡하다.

올해 101세인 추상화가 김병기 화백(사진)은 한국 화단의 최고령 현역 작가다. 오는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상수전-백세청풍(百歲淸風)’을 시작하는 그는 “오늘도 붓질을 하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 즐겁고 행복하다”며 “예술에 ‘완성’이란 없다. 창작 당시의 정신상태를 기록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1916년 4월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부친(김찬영)의 뒤를 이어 일본에서 유학하며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서양 미술세계를 접했다. 1948년 월남해서는 한국 추상미술 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는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김병기 화백의 ‘백세청풍’전에 출품되는 1978년작 ‘사라토가의 호수’.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오는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김병기 화백의 ‘백세청풍’전에 출품되는 1978년작 ‘사라토가의 호수’.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김 화백이 살아온 궤적은 디아스포라(이산)를 떠올리게 한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월남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과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설립 당시 미술과장을 지낸 그는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브라질에서 열린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홀연히 미국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했다. 지난해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그는 ‘고국’ ‘조국’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꺼냈다. “이곳에 다시 정착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평생의 화업을 ‘열정의 산물’로 규정하는 그에게 그림은 ‘오늘의 정신성’을 대변하는 작업이다. 5월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미술인생’ 70년 동안 물질문명으로 피폐해진 현대인의 정신성을 복원하는 데 역점을 둔 50여점을 건다.

그의 작품은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적 영향을 거침없이 내보이면서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원시림 사이에 뚫린 고속도로처럼 그의 풍경 속에는 직선이 달린다.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이 직선은 화면을 긴장하게 만든다. 김 화백은 “이런 화면 분위기는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뉴욕생활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열정을 보여준 김 화백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도 남달랐다.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 명동 쪽에서 북한산을 바라봤을 때는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지요. 6·25전쟁 때는 아들의 시체를 안은 어머니의 연민같이 처량했고요. 지금은 북한산을 볼 때마다 세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엄한 리듬을 느낍니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해 달라는 요청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점을 살고 있다”며 “순간을 뜨뜻미지근하게 보내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령 작가인 만큼 다시 태어나는 심정으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현역으로 봐 주세요. 화가로서 저는 행운아입니다. 화단에서 근대와 현대의 가교 역할을 했고, 새로운 화법과 호흡하며 젊음을 배우려고 애썼죠. 천재 문학가 이상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가 낙수 소리에 착안해 작품을 구상한 적도 있었죠. 화가는 항상 젊어야 하는데 상수 이후 오래도록 젊은 생각을 간직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101세 현역’의 건강 비법이 궁금했다. “늙어서도 작업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선한 채소·커피·토스트·치즈·불고기를 즐겨 먹고 소식하고요. 가끔 와인은 한 잔씩 해도 절제하며 살죠. 그게 제 일상입니다.” (02)720-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