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입춘 별미
오세영 시 ‘2월’에 나오는 것처럼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 2월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고,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걸 보니 벌써 입춘이다.

이맘때 우리 조상들은 햇나물을 먹으며 겨우내 부족한 비타민C와 철분 등을 보충했다. 입춘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다섯 가지 자극성 있는 나물을 뜻하는 오신채(五辛菜)다. 지역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파, 마늘, 달래, 평지(겨자과 유채), 부추, 무릇, 미나리 중에서 색을 맞춰 다섯 가지를 무쳐 먹었다. 달래는 불면증 치료에 좋고, 겨자잎은 면역성을 키워주며, 미나리는 혈액순환을 도우니 몸에 좋고 입맛을 돋우기에도 좋다.

냉이와 죽순채를 즐기는 것도 이 무렵이다. 채소 중 단백질 칼슘 철분이 제일 많은 냉이를 모시조개와 함께 넣고 끓인 된장찌개는 구수함과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탕평채와 죽순채, 죽순찜도 빼놓을 수 없는 입춘 시식이다. 추운 지역에서는 명태순대를 즐겼다. 내장을 빼낸 명태 뱃속에 소를 채운 것으로 비타민 A가 풍부해 눈 건강과 피로해소에 좋다.

일본 사람들은 입춘 전날에 콩을 먹으며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가게마다 설 선물 코너 같은 데서 복콩(후쿠마메)을 판다. 대형 신사에서는 저명인사가 던지는 콩을 받아먹는 이벤트가 열린다. 에호마키라는 이름의 김밥을 먹기도 한다. 그 해에 정해진 방향을 보며 눈을 감고 말없이 먹는데, 외국인이 보기엔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입춘 전날 악령을 쫓는다는 뜻에서 메밀국수를 즐겨 먹는다. 지역에 따라선 ‘풀뿌리를 먹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무를 씹어먹는 풍습도 있다. 춘쥐안(春卷)을 즐기는 풍습은 화교권 전체에 걸쳐 있다. 잠업(蠶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풍년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설날인 춘제(春節)와 겹쳐 자오쯔(餃子), 만터우(饅頭), 탕위안(湯圓)을 먹는 곳도 많다.

요즘은 입춘 풍속도가 바뀌어 음식 메뉴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처럼 손이 많이 가는 오신채나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는 가정은 드물다. 아이들도 프랜차이즈나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냥 한 끼 때우고 만다. 두보가 시 ‘입춘’에서 ‘봄날 채반에 오른 어린 생채에 낙양의 전성기가 생각난다’고 노래한 것도 고릿적 얘기다. 그러나 김칫독이 얼어 터진다는 입춘 추위에 봄 향미 짙은 별미로 건강을 챙기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필요한 생활의 지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