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생생 리포트 - 10주기 맞은 백남준을 만나다

갤러리 현대, 4월3일까지 국내 최대 개인전…100여점 전시
작품값 턱없이 저평가…미국 가고시안화랑 전속 이후 '탄력'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한국과 예술적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이다. 당시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소개로 프랑스 파리에서 백남준과 만났다. 백남준은 그 자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생중계 위성쇼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백남준의 예술적 열정에 감복한 박 회장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박 회장 주선으로 34년 만에 고국을 찾은 백남준은 1984년 1월1일 파리, 미국 뉴욕, 서울을 연결하는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였다. 천재적 아티스트, 비디오예술가, 작곡가, 행위예술가, 심지어 사상가로서 강한 이미지를 심은 계기였다. 백남준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9월 갤러리 현대에서 첫 국내 개인전을 열어 다가올 디지털 시대의 미학을 깊이 있게 보여줘 찬사를 받았다. 기술과 예술, 삶이 모두 연결돼 통하는 디지털 세상을 시각예술로 예견한 백남준이 타계한 지 29일로 10년이다. 갤러리 현대를 비롯한 미술계는 올해도 추모행사와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백남준 재조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은 사기다' 백남준의 미학 열풍…국내외 거래 활기, 낙찰률 80%로↑

◆국내 최대 규모 백남준 전시회

백남준의 예리한 통찰력과 그가 꿈꾸던 미래의 미학 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4월3일까지 펼쳐진다. ‘백남준, 서울에서’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이 열리던 작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동안의 전시회가 대표작에 포함되기 어려운 비디오아트 몇 점과 다른 자료를 함께 보여준 경우가 많았던 데 비해 이번 전시에는 1960~1990년 시기별 대표작에 속하는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를 찾은 관람객이 백남준의 ‘살로 무어맨’을 감상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를 찾은 관람객이 백남준의 ‘살로 무어맨’을 감상하고 있다.

오리지널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대형 설치작품, 추모곡, 사진 작업, 퍼포먼스 영상 등 40여점이 전시된다. 또 1990년 갤러리 현대 뒷마당에서 행한 진혼굿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와 관련된 오브제와 기록을 26년 만에 공개한다. 그동안 백남준 작품을 보여준 전시회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다. 특히 비디오아트 중에는 1986년부터 작가의 감수성을 접목한 ‘TV 로봇’ 시리즈인 ‘세종대왕’ ‘선덕여왕’ ‘살로 무어맨’ ‘할머니’ ‘할아버지’ ‘나의 파우스트’ 등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상당수 들어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데 2년 넘게 걸렸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걸작들과 세계적인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망라해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방가르드 음악가 샬럿 무어만이 첼로를 켜는 작품, 한국 대가족 개념을 형상화한 ‘로봇 가족’ 시리즈, 찰스 다윈과 뉴턴에 대한 존경을 묘사한 작품,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파우스트’ 등은 영상만 내보냈던 TV가 조형작품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파격을 보여준다.

도형태 갤러리 현대 부사장은 “백남준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문화예술계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높은 가치의 아이콘이란 생각에 10주기 기념전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름값 못 미치는 작품값

국내외 미술계가 백남준과 그의 예술혼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작품 가격은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화랑가와 경매에서 그의 비디오아트는 크기와 작품성에 따라 점당 1억~7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시세는 점당 ‘100만달러 클럽’에 속한 미국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물론 이우환,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중국의 쩡판즈 등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1995년작 ‘라이트 형제’가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503만홍콩달러(약 7억원)에 팔려 낙찰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워홀의 1963년작 ‘세 명의 엘비스’가 지난해 8190만달러(약 900억원)에 팔린 것에 비하면 국제적인 명성이 무색하다.

2006년 작고 이후 서울옥션과 K옥션 등 국내 경매에 나온 백남준의 작품(판화 회화 사진 포함)은 444점이다. 1998~2005년 출품된 작품(41점)의 10배 이상이 지난 10년 동안 쏟아져 나왔다. 미국 최대 화랑 가고시안갤러리는 백남준의 작품이 저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라 2014년 백남준을 전속작가로 영입했다. 그래서인지 미술시장의 ‘온기’가 감지되던 작년 한 해에만 109점이 국내 경매에 출품돼 87점이 팔려 낙찰률 79.8%를 기록했다. 낙찰 건수로는 2005년(5점)보다 17배 정도 늘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200여점에 불과한 점을 고려할 때 상당폭의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가고시안이 국내외 미술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칠 경우 가격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게 미술계의 전망이다.

29일 봉은사서 추모재…특별전시회도 잇따라

백남준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추모행사가 이어진다.

서울 봉은사는 29일 오후 1시 법왕루에서 10주기 추모재를 올린다. 추모재에는 봉은사 승려와 신도, 고인의 한국 측 대리인인 도로시 남 백스튜디오 대표를 비롯해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특별전 ‘손에 손잡고’를 29일부터 오는 7월3일까지 연다. 20세기의 백남준과 21세기 예술인이 서로 살던 시공간은 다르지만, 예술작품을 매개로 손을 잡고 그의 작업이 지닌 무한한 확장성에 주목해 보자는 취지의 전시다. 하반기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융합한 ‘NJP 링크 프로젝트’를 열 계획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6월14부터 7월31일까지 서울 서소문 본관에서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등 백남준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로 10주기 추모전을 연다. 또 최근 서울시가 매입한 백남준의 어린 시절 집터에 기념관을 조성해 백남준 탄생일인 7월20일 개관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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