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장미꽃 길’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장미꽃 길’
스페인 여류 화가 에바 알머슨(47)의 ‘시골에서의 하루’는 동화적이다. 풀밭에서 식사하고 있는 단란한 가족의 천진난만한 자세와 표정을 간결한 선과 색으로 잡아냈다. 어린아이가 그림을 그린 듯 유치해 보이지만 그림 속 인물들이 빚어내는 따뜻한 풍경은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알머슨의 판화를 비롯한 탄탄한 화력의 국내 작가 그림을 압축해 제작한 뮤라섹(mulasec) 기법의 이색 작품을 마치 빵 가게에서 빵을 고르듯 구입할 수 있는 ‘프린트 베이커리’전이 열린다. 25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설맞이 그림 선물’전이다. 설 명절을 맞아 술이나 과일, 의류 등 평범한 선물에서 벗어나 ‘문화’를 선물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뮤라섹 판화는 피그먼트 안료를 사용해 그림을 압축한 다음 아크릴 액자로 제작한 아트 상품이다. 질감이 섬세하고 색감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참여 작가들이 직접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 미술시장의 ‘블루칩’ 작가 김환기와 장욱진, 박서보, 김창열, 이왈종, 사석원, 윤병락, 김성호, 강석문, 박형진, 권수현, 전영근, 정영주, 홍지연 씨 등 작고·중견·신진 작가 20여명의 뮤라섹 판화 30여점이 걸린다. 미술품 소장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값을 3호 9만원, 5호 15만원, 10호 18만원, 20호 38만원으로 책정했다. 점당 55만원에 출품된 장 화백의 그림은 구입한 고객이 2년 뒤 되팔 경우 구입가의 80%를 1년간 보장해 준다.

출품작은 예쁜 구상화부터 단색화, 정물화, 풍경화, 팝아트까지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김환기의 1958년작 ‘항아리와 매화’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펼친 파리시대 대표작으로, 조선백자와 매화의 미학적 가치를 되살려냈다.

영국 최대 화랑 ‘화이트큐브’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단색화가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는 전통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다음 연필이나 자로 수없이 긋고 밀어내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촉각성과 정신성이 하나의 공간에서 겹치거나 서로 맞물리며 궁극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게 이채롭다.

자연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된 환상적인 공간을 경쾌하게 묘사한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 시리즈는 자동차, 꽃, 새, 강아지, 닭 등 생활 주변에 있는 동식물과 상품이 골프장에서 신나게 뛰논다. 분노와 불안을 물방울에 응축한 김창열, 서울 도심에서 움트는 여명의 빛을 잡아낸 김성호, 고향인 경북 영주에서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화폭에 옮긴 윤병락, 붉은 새싹을 바라보는 강아지와 소녀를 그린 박형진, 활짝 핀 모란에 인간 행복을 시처럼 담아낸 홍지연 등 작가 특유의 재치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그림도 출품됐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미술을 좋아하지만 선뜻 작품을 사기 쉽지 않은 일반인이 손쉽게 그림을 골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프린트 베이커리’라는 브랜드를 선보였다”며 “이번 설에는 지인들에게 과일이나 술보다 화가의 열정과 감성을 선물한다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