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북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카렌족의 한 여인
태국 치앙마이 북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카렌족의 한 여인
여행객들은 치앙마이를 ‘태국의 과거 모습을 담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원시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란나왕국 시절 번성했던 유적과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치앙마이는 천천히 걸으면서 즐겨야 한다. 높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자연을 닮은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 때문에 여행이 행복해지는 도시 치앙마이는 몇 번을 찾아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천국 같은 곳이다.

성문과 해자로 둘러싸인 구시가지

치앙마이는 1296년 멩라이 왕이 세운 고대 란나왕국의 수도로 500년 동안 번성했다. 태국 북부 지역을 통치했던 란나왕국은 치앙라이에 첫 번째 수도를 뒀으나, 미얀마의 잦은 침공 때문에 치앙마이로 수도를 옮겼다. 그 후 16세기까지 태국 북부의 독특한 부족문화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역사의 도시.

치앙마이 구시가지 안에 있는 왓체디루앙
치앙마이 구시가지 안에 있는 왓체디루앙
치앙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짐을 푸는 곳은 구시가지다. 다섯 개의 성문(타패·Tha Phae)이 있는 구시가지에는 불교사원과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구시가지에만 100여개가 넘는 불교사원이 있다. 대표적인 곳은 왓 체디 루앙. 방콕의 왓 프라깨우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이 원래 안치됐던 곳으로 유명하다. 본당 뒤편에 있는 거대한 벽돌 체디(탑)가 압권이다. 본래 높이 84m로 지었으나 지진으로 무너진 뒤 지금의 60m 높이에 한쪽이 부서진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용을 연상케 하는 계단의 수호상 ‘마라카’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후, 체디 왼쪽으로 돌아가면 불상을 모신 탑 중간의 한쪽 면에 하얀색 코끼리가 줄줄이 박혀 있다. 태국 어디에서도 이처럼 거대한 코끼리가 탑 중간에 장식된 경우를 본 적이 없어 더욱 신기했다. 이는 캄보디아 힌두 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치앙마이의 불교 유적들이 캄보디아와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 오래된 사원인 왓 치앙과 왓 프라싱도 구시가지에서 꼭 챙겨 봐야 할 대표 사원들이다. 하지만 치앙마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원은 해발 1677m의 수텝 산 정상에 있는 왓 프라탓이다. 산 아래에서 케이블카를 타거나 30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야외 불전 한가운데에 20m가 넘는 황금 체디가 눈부시게 세워져 있다. 우산 모양의 상단부에는 부처의 유골(사리)이 모셔져 있어 많은 불교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치앙마이의 현재, 커피와 디자인

구시가지에서 구경할 곳이 사원만은 아니다. 요즘에는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카페와 갤러리, 부티크 호텔이 속속 생겨나 여행자를 반긴다. 치앙마이가 있는 태국 북부는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커피는 태국 왕실의 특별한 노력으로 국가적인 산업으로 성장했다. 아편을 재배하고 살았던 고산족을 구제하기 위해 아편 대신 커피를 재배하게 했다. 정부가 원두 재배부터 포장, 운송, 마케팅까지 지원하면서 도이창, 도이퉁, 와위 같은 질 좋은 유명 현지 커피 브랜드가 생겨나게 됐다.

뛰어난 커피가 생산되면서 자연스럽게 시내에 커피를 파는 카페가 늘었고 그중에는 젊은 예술가적 감성이 넘치는 공간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치앙마이를 처음 가는 여행자라면 ‘이 도시가 이렇게 세련된 곳이었나’ 하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요즘 치앙마이의 젊은이들은 ‘님만헤민’이라는 동네에서 밤을 보낸다. 이곳에 근사한 카페와 바, 클럽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코끼리를 타고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치앙마이에서는 코끼리를 타고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치앙마이는 트레킹의 대표적 명소이기도 하다. 열대우림을 체험하거나 계곡의 상류에서 뗏목을 타고 내려오다 수영도 하고, 여러 소수민족이 사는 고산족 마을에서 잠도 잘 수 있다. 도보로 이동하는 중간에 코끼리를 타고 트레킹을 하기도 한다. 여행사마다 코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트레킹의 내용은 비슷하다. 일정도 1박2일에서 1주일까지 원하는 날짜대로 짤 수 있다.

목이 긴 여인이 살고 있는 카렌족 마을

대부분의 여행객은 메오족이 거주하는 도이푸이나 카렌족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방문한다. 치앙마이 메싸이에 있는 일명 ‘롱넥마을(Long neck)’인 카렌족 마을은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카렌족은 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부족으로 원래는 미얀마에서 살았다. 카렌족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자 불교가 국교인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받아 태국으로 옮겨왔고 태국 정부는 민속촌처럼 꾸며놓은 마을에 카렌족 일부를 이주시켜 살게 했다. 평생 목에 황동으로 고리를 감고 생활하는 카렌족(원래는 파동족으로 카렌족의 일파다)의 여인들이 상점마다 앉아 있다. 가게 뒤로는 그들이 사는 집도 붙어 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카렌족 여인들은 실을 잣고 베틀로 천을 짠다. 그 흔한 호객 행위도 없고, 여행객들이 말을 걸면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달관한 듯한 모습에서 비애(悲哀)가 느껴져 씁쓸한 감정을 지울 길이 없었다.

여행수첩

해발 335m의 분지 형태로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치앙마이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700㎞ 떨어져 있다. 도이수텝, 인타논 산 등 1000m가 넘는 고산(高山)들이 이어지며,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도시의 온도를 낮춰준다. 겨울에는 아침 기온이 10도 안팎까지 떨어지므로 두툼한 재킷 하나쯤은 챙겨가야 한다. 대한항공과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가 인천~치앙마이 간 직항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치앙마이=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