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은 제가 쓴 시나리오라는 편지에 대한 답장이겠죠.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 다른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당선되지 못한 사람들도 절대로 틀린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황현진 씨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공기처럼 접했다”며 “사람들이 살아가며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시나리오 부문 당선자 황현진 씨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공기처럼 접했다”며 “사람들이 살아가며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2016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나리오부문에 당선된 황현진 씨(31)는 수상 소감 대신 수상하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신춘문예 당선은 기쁜 일이지만 자신의 수상 소감을 보면서 낙담할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1985년 미국에서 태어난 황씨는 일곱 살 때 한국에 왔다. 초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한반도는 어떤 동물을 닮았느냐”는 문제를 봤다. 그의 답은 ‘해마’였다. 하지만 교과서에 적힌 답은 ‘호랑이’뿐이었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는데도 획일적인 답을 강요받았던 학교의 풍경은 그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영화를 공기처럼 접했어요. 시나리오 쓰기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죠. 사회구조에 대한 질문, 인간의 본성, 무한 경쟁에 따른 피로감 같은 화두를 붙잡고 펜을 들었어요. 이런 고민을 거쳐 나온 작품이 ‘귀신’입니다.”

당선작 ‘귀신’은 해병대 부대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와 탈영, 사고를 일으킨 병사와 이를 쫓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군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꼼꼼한 취재와 밀도 있는 구성, 힘 있는 필력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완성한 수작”이라며 “앞으로 작품 활동이 기대된다”고 호평했다. 춘천에서 군대 생활을 한 황씨는 “단순히 군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친구나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옆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군대와 탈영이라는 설정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2016 한경 청년 신춘문예] "왜 같은 답만 원할까?  학창시절 의문이 펜을 들게 했죠"
“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가 없겠죠. 하지만 경쟁에서 잠시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젊을 때 도전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단 한 번 실패했을 뿐인데도 ‘네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고 비난합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노력을 했겠지만 결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능력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황씨는 지난 6월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교육생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콘텐츠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통해 청년 창작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황씨는 연극평론가인 이은경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선생님이 작품을 읽고 많은 질문과 조언을 해준 게 큰 도움이 됐다”며 “함께 연극을 보고 이야기한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3월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예술전문사 과정을 밟는다. 영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고, 영화가 좋아 모인 동료들과 함께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부푼다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쓴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해보고 싶습니다. 그 작품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기억에서는 사라져도 그 시대를 표현한 중요하고 정확한 영화였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