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는 얼굴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보여줘야 합니다. 겉모습만 남기려면 사진을 찍으면 되지요.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인 초상화를 많이 그린 것은 제가 그 나라를 이해하고 새로운 관람객과 교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 현대미술의 중심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양화가 강형구 씨(60·사진)는 31일 이렇게 말했다. 강씨는 지난 5일 베이징에 있는 파크뷰그린 전시관에서 ‘영혼(靈魂)’ 전을 개막했다. 최근작 30점을 출품해 오는 2월26일까지 전시한다. 상하이 현대미술관에서는 12월10일부터 ‘초상무계(肖像無界)’전을 열고 있다. 2월19일까지 열리는 상하이 전시에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 53점을 걸었다. 한국 작가가 중국의 두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대형 초상화다. 테레사 수녀와 링컨 등 유명 인물의 얼굴을 200호 이상 크기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허구의 모습이다. 36세에 사망한 배우 마릴린 먼로의 80대 모습을 상상해 그리는 식이다.

강씨는 “이번 전시의 목적은 중국 진출”이라고 밝혔다. 전시 준비를 하는 두 달 반 동안 현지에 머무르며 중국인에게 친숙한 소재를 택해 작업했다. 얼굴 그림을 그린 것도 감상의 대상을 넘어 무언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베이징에서는 베이징 위안런(原人), 관우, 덩샤오핑을 그렸다. 각각 중국 선사시대와 고대, 현대를 상징한다. 6m 높이의 관우 초상화에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주로 썼다. 상하이에서는 상하이 인근 출신이며 작품에 지역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던 문학가 루쉰을 그렸다.

각 전시관에는 공개 작업실을 마련했다. 강씨는 “작업 과정과 작가의 습관, 본성을 보여주는 전시 방법으로, 중국 관람객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