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께서는 인격살인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생매장 당해 13개월 동안 무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나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무덤 속으로 밀어넣으셨습니다.”

"정명훈, 또다시 날 인격살인"…이번엔 박현정 반박 편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사진)가 30일 정명훈 예술감독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인간, 음악가, 한국인 정명훈 선생님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언론사에 배포했다. 정 감독이 전날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서울시향이 지난 10년간 이룩한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됐다”며 박 전 대표를 비판한 데 대한 반박이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벌어진 두 사람의 편지 공방은 진실 게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박 전 대표는 편지에서 정 감독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한 번 인격살인을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서울시향 직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경찰 소환에 응하지 않아 수사가 많이 지연됐다”며 유럽에 체류 중인 정 감독의 부인 구모씨와 병원에 입원한 정 감독의 비서 백모씨가 경찰 조사에 응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감독님이 이렇게 떠나시고 사모님도 귀국하지 않으시면 진실 규명은 요원해진다”며 “정 감독께서 이런 식으로 도피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고도 했다. 구씨는 박 전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구씨와 백씨가 박 전 대표에 대한 폭로전을 모의했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박 전 대표는 “사모님과 백 비서가 4개월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80페이지나 된다고 하고, 피의자인 직원 10명이 카톡방에서 투서 작성 시 주고받은 대화는 저를 음해하는 내용으로 얼룩져 있다고 한다”며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줄 중요한 단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의 법률대리인은 “정 감독 부인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피해를 입은 시향 직원들이 권리를 찾도록 도와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동안 경찰은 추후 수사 과정에서 조사할 수도 있다고만 했지 정 감독과 부인에게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거나 소환한 적은 없다”며 “경찰이 협조 요청을 해온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조사에 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정 감독 측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조용히 대응해 왔으나 악의적으로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이날 박 전 대표의 편지에 대한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시향도 구씨의 배후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구씨가 입국하기 전까지는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진실 게임은 당분한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정 감독은 이날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돼 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마지막으로 지휘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