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회사 홍콩 크리스티가 지난달 29일 실시한 ‘아시아 근현대 미술품 경매’에서 한국 작가 김환기의 작품을 입찰에 부치는 모습. 연합뉴스
미술품 경매회사 홍콩 크리스티가 지난달 29일 실시한 ‘아시아 근현대 미술품 경매’에서 한국 작가 김환기의 작품을 입찰에 부치는 모습. 연합뉴스
미술품 경매에서 속속 낙찰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단색화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한국 화단에 쏠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5일자로 발행한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잡지 ‘하우 투 스펜드 잇(How to Spend it)’은 한국 미술을 다섯 면에 걸쳐 소개했다. ‘한국이 주도한다(Korea Driven)’는 제목의 이 기사에서 FT는 “올해는 한국이 세계 미술무대의 중심에 선 해”라며 “드디어 한국이 국제 미술계에서 아시아를 선도하는 창의성 발전소로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FT는 세계가 한국 미술을 주목하는 근거로 지난 5월 열린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를 들었다.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했던 한국은 1995년부터 한국 미술을 고정적으로 소개하는 한국관을 운영하고 있다. FT는 “그간 이불(1999년) 양혜규(2009년) 이용백(2011년) 등의 작가가 일부의 관심을 끌었지만, 올해는 한국 미술이 한국관 안팎에서 관심을 모았다”고 전했다. 올해 한국관 대표작가로 초청돼 대규모 멀티미디어 설치작품을 선보인 문경원 전준호 작가, 영화 ‘위로공단’으로 한국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은 아시아 창의성의 발전소"…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
비엔날레 외부 전시인 ‘경계의 재상상’전에 초청된 김준 작가와 전광영 작가도 소개했다. 3차원(3D) 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사진합성 작업을 해 온 김준의 ‘채색 두폭 제단화’는 5월 런던 필립스 경매에서 2만1875파운드(약 3900만원)에 팔렸다. 한지와 전통공예 기법으로 추상설치 작품을 제작해 온 전광영의 ‘집합 04 № 054’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4만3750파운드(약 7750만원)에 팔렸다. 김씨는 내년 중국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고, 전씨는 내년 런던에 있는 버나드제이컵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FT는 “각각 최신 기술과 전통 기법을 쓰는 두 작가가 모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FT는 “올해 비엔날레에서 특별전을 연 단색화가 한국 미술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며 “최근 빠르게 오르고 있는 단색화 경매가가 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우환 화백의 1976년작 ‘선으로부터’는 지난해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16만5000달러(약 25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는 김환기 화백(1913~1974)의 1971년작 전면점화 ‘19-Ⅶ-71 #209’가 3100만홍콩달러(약 47억1000만원)에 팔리며 새 기록을 세웠다.

"한국은 아시아 창의성의 발전소"…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
정상화 박서보 정창섭 하종현 권영우 등 다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도 가격이 뛰고 있다. 런던과 뉴욕, 홍콩에서 작년보다 두 배나 뛴 40만파운드(약 7억9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알렉스 브랜지크 소더비런던 현대미술담당은 “약 18개월 전부터 단색화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이런 한국 예술 열풍이 단순한 ‘반짝 인기’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즘과 단색조가 유행하는 미술시장에서 유럽과 북미 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단색화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예술 컨설턴트이자 큐레이터인 아리안 르벤 파이퍼는 “2012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한 ‘한국의 시선’전이 서양에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는 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 전시를 후원했던 패러렐미디어그룹의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 미술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최근 그 점들을 잇는 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FT는 세계적인 한국 미술 열풍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동방의 특이함과 신선함이 주 무기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수준 자체가 높다는 것이다. 영국 버밍햄 아이콘갤러리의 조너선 왓킨스 학예실장은 “일본과 중국 예술이 주목받았으니 이번에는 한국에 차례가 돌아온 것일 뿐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며 “예전에 일본 미술을 이국적으로만 봤던 것처럼 한국 예술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