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천재' 조성진, 일본 먼저 간 까닭은
지난달 제17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18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첫 공식 회견이다.

20일과 21일 도쿄 NHK홀에서 NHK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주일(駐日) 폴란드대사관이 주최한 자리였다. 이번 공연은 조성진의 아시아 투어 첫 무대다.

한국인 우승자가 왜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공연을 할까. 쇼팽콩쿠르 우승자가 아시아에선 NHK심포니오케스트라와 가장 먼저 협연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서다. 2005년과 2010년에 각각 우승한 폴란드의 라파우 블레하츠와 러시아의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도 우승 직후 첫 아시아 공연을 도쿄에서 NHK심포니와 했다.

쇼팽콩쿠르뿐만이 아니다. 차이코프스키콩쿠르, 퀸엘리자베스콩쿠르 등 굵직한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는 아시아 투어에서 일본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세계 정상급 연주자의 연주여행도 마찬가지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음악사업팀장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관객 수준과 규모, 공연장 등 클래식 인프라를 가장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클래식 수요는 탄탄하다. 일본 전역에 있는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은 80여곳에 달한다. 도쿄에 있는 산토리홀, 도쿄문화회관, 오차드홀, 도쿄예술극장 등은 세계적 수준의 전용 공연장으로 꼽힌다. 20일 조성진 공연의 가장 비싼 좌석인 S석 관람료는 8800엔(약 8만4000원)으로 싼 편이다. 박 팀장은 “클래식 관객층이 넓어서 공연을 여러 차례 할 수 있고, 투어 공연이 가능하기 때문에 관람료를 비싸게 책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20, 21일 NHK심포니오케스트라와 두 차례 공연한 뒤 23일 도쿄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우승자 리사이틀을 연다. 제17회 쇼팽콩쿠르 입상자 갈라콘서트는 일본에서는 내년 1월28일과 29일 도쿄예술극장 콘서트홀에서 두 차례 열린다. 한국에서는 내년 2월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 차례 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클래식 수요가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일본은 클래식 수요와 인프라 투자가 맞물리며 ‘선순환’ 궤도에 올라섰다.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쓰코,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미도리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뿐 아니라 프로·아마추어 연주자층이 고루 두텁다. ‘나가타 어쿠스틱스’ 등이 주도하는 음향설계 분야와 악기 제작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경영 한양대 교수는 “일본에선 바로크음악 인기도 높아 고(古)악기를 직접 제작하는 장인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