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트랩

에스와르 S 프라사드 지음 / 권성희 옮김
청림출판 / 560쪽 / 2만2000원
[책마을] 금융위기 후 더 강해진 달러…세계경제는 '달러 덫'에 걸렸다

《달러 트랩》은 국제금융을 이해하고는 싶지만 도무지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할 만하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오히려 강화된 이유를 비롯해 국제 금융시스템의 이모저모에 관해 쉽고 흥미롭게 설명하고 분석한다. 난해한 이론과 그래프로 국제금융을 설명하는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점이다.

‘달러 트랩(덫)’이란 중국이나 한국 등 각국이 장기적으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큰 손실을 입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로 대표되는 달러화 자산을 계속 보유할 뿐 아니라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달러라는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코넬대 국제통상 교수로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에스와르 S 프라사드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금융연구국장과 중국 사업부 대표를 지냈다.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오히려 세계 금융시스템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쥐게 된 지금의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게 됨에 따라 각국은 보호막으로 안전자산(외환보유액)을 쌓게 된다. 자본의 급격한 유출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고,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 화폐 가치의 절상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전자산의 투자 대상은 미국 국채 외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유로존이나 영국, 일본의 국채가 대안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 전망이 어두워지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됐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었는데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줄어들었다. 결국 각국은 미국이 공급하는 달러에 더 의존하게 됐다.

물론, 각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외환보유액을 늘리지 않고 그냥 둠으로써 자국 통화 가치가 달러화에 비해 절상되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 이 경우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미 보유한 미국 국채에서 평가 손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반면 지금 하는 방식대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절상 폭을 제한하면 달러화 표시 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나중에 달러화 가치가 절하될 때 더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결국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에서 손실을 입을 시점을 골라야 하는데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각국은 대부분 외환보유액의 손실을 미래로 미루는 선택을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방만한 재정지출을 계속할 수 있게 되고 세계 통화시스템에서 달러화의 지배적인 역할은 강화되고 있는 게 국제금융의 현실이다.

저자는 주요국이 이런 ‘달러화의 덫’에 걸려들어 있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중 미 대사관은 중국이 달러화의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 기밀 보고서를 워싱턴DC로 보냈다. 중국 정부가 미 국채 이외의 대안을 찾을 수 없고, 미래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 미 국채를 매도한다면 국채 가격 하락에 따른 엄청난 손실을 질 수밖에 없다. 결국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은 계속 미국 국채에 불가피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기능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은 많지만, 저자는 달러의 기능을 세분화해 분석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화폐는 가치 척도, 결제 수단, 가치 저장 수단의 기능을 갖는다. 달러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능은 약화될 것이다. 교역 상대국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한 달러의 가치는 결국 하락할 것이다. 또 미국이 아닌 국가와 거래할 때 달러 이외의 화폐로 결제하기가 수월해진다. 하지만 안전자산으로서 가치저장 기능은 오히려 강화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은 공고해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프랑스가 파운드화의 덫에 걸린 적이 있다. 1928년 6월부터 1931년 9월까지 프랑스는 이전까지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 자산을 뒤늦게 달러화 자산으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파운드 가치가 폭락해 프랑스 중앙은행은 큰 손실을 입었고 실질적으로 파산 상태에 몰려 정부 지원을 필요로 했다.

각국이 달러 덫에 빠져있는 동안 달러를 보유한 미국은 과도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 2012년 미국은 4조4000억달러의 순채무국이지만 오히려 2060억달러의 투자수익을 남겼다. 미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낮은 이자만 제공하고 돈을 빌려 쓰는 반면, 다른 나라는 제로금리로 달러를 조달한 미국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지급한 결과이다.

58개국에 대한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7월 이후 8개월 동안 25% 이상의 심각한 외환보유액 감소를 경험한 나라는 11개국이다. 한국은 11개국에 속한 유일한 선진국(2012년 1인당 GDP 1만6000달러 이상 기준)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많은 외환보유액을 쌓았지만 한국은 자본의 이동에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용기 < 아주대 경영대 대우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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