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오는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의로운 목적에서 시작한 복수는 더 비극적인 결말을 낳게 마련이다. 난세일수록 복수의 칼날은 날카롭게 벼려진다. 법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이들은 개인적인 복수를 도모한다. 부모의 원수를 찾아가 가차 없이 죽인다. 화를 당한 이들의 자식은 또 다른 복수를 다짐한다. ‘복수의 씨앗’이 자라는 것이다. 결과는 비극의 악순환이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 제작, 고선웅 연출)은 한마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년간 ‘복수의 씨앗’을 품고 키운 필부(匹夫)의 고난사를 그렸다. 원작인 ‘조씨고아’는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다. ‘동양의 햄릿’으로도 불린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춘추시대 사건을 원나라 작가 기군상이 재구성했다.

진나라 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정적인 조순을 역적으로 몰아 그의 일가 300명을 멸한다. 이 과정에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 ‘고아’만 살아남는다. 시골 의원 정영은 조씨 집안과의 작은 인연으로 제 자식까지 죽여 가며 고아를 살리고 20년간 도안고 집안에 들어가 살며 복수를 준비한다.

연극은 연출가 특유의 과장된 몸짓 언어를 통해 단순한 진리를 드러낸다. 신의, 은혜와 같은 인간적인 가치와 복수 끝에 남는 허망함이다.

20년 세월을 진창에 처박아버리고 성공한 복수 끝에 남은 것은 그 과정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이다. 고아의 부모인 조삭과 공주, 궁에서 빠져나올 길을 내주고 자진한 한궐, 고아를 숨긴 죄를 대신 뒤집어 쓴 공손저구, 그저 멍한 눈으로 제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내까지. 복수를 마친 정영의 눈빛은 허망하다. 죽음을 앞둔 도안고가 그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20년을 내 옆에서 꾹 참았나? 네 인생은 도대체 뭐였어?”

연극은 가식적이고 과장된 신파 연기와 개그적인 동작과 말투 등 고선웅 특유의 희극적인 연극어법을 많이 사용해 비극적인 이야기를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간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희화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며 조합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텅 빈 무대와 최소화한 소품 사용, 반원형으로 둘러쳐진 커튼은 중국 전통적 연희 무대를 연상케 한다. 정영 역을 맡은 중견 배우 하성광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무대다.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극의 결말에서 나비와 함께 등장하는 묵자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이 이야기를 거울삼아 잘들 분별하시기를.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오는 22일까지, 2만~5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