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2관에서 시작하는 ‘극단 차이무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는 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2관에서 시작하는 ‘극단 차이무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1996년 8월1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씨어터. 창단 2년차 신생 극단 ‘차이무’가 제작한 세 번째 작품 ‘비언소’의 막이 올랐다. 연우무대 출신 이상우 차이무 대표(현 예술감독·사진)가 대본을 쓰고,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박광정 씨가 연출한 무대에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배우 5명이 등장했다. 이대연 송강호 박원상 최덕문 오지혜.

어느 번잡한 도시의 남자용 공중화장실을 무대 배경으로 이들은 다양한 역할로 쉴 새 없이 변신하며 온갖 세상 이야기들을 펼쳐냈다. 날카로운 풍자 가득한 대본, 재기 넘치는 연출, 능수능란한 연기가 결합한 무대에 관객은 환호했다.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소극장 공연인데도 석 달 동안 관객 2만여명을 동원,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이 작품으로 차이무는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단으로 떠올랐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들은 이후 한국 연극영화계 중추로 성장했다. 송강호는 영화계 최고 스타가 됐고, 이대연 박원상 최덕문 오지혜는 영화와 TV, 연극을 넘나들며 활약을 펼치는 연기파 배우들로 자리잡았다. 이들 외에도 유오성 문소리 이성민 전혜진 정석용 등 이름난 배우들이 이곳을 거쳐 가 연극계에선 차이무가 ‘별들의 고향’으로 불린다.

차이무 "송강호·유오성·이성민 배출한 극단…연극계선 '별들의 고향'으로 통하죠"
차이무가 오는 6일부터 창단 20주년 기념 연극 세 편을 잇달아 올린다. 신작 ‘꼬리솜 이야기’와 ‘원 파인 데이’, 재연작 ‘양덕원 이야기’다. 공연을 앞두고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상우 예술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은 20년 전을 이렇게 회고했다.

“연우무대를 떠나 한동안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어요. 그때 제 사무실에 송강호 유오성 등 밥 먹을 돈도 없는 가난한 배우들이 눌러앉았습니다. 매일 밤 술만 마셔대니 다들 망가지겠다 싶어 이 친구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1995년 7월 결성된 차이무의 시작이었죠.”

‘차원이동무대선(船)’이라는 의미의 차이무는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늘근도둑 이야기’ ‘비언소’ ‘거기’ ‘플레이랜드’ ‘평화씨’ ‘양덕원 이야기’ 등 분단과 비틀린 성문화,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등 무거운 사회 문제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작품들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6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2관에서 공연되는 ‘꼬리솜 이야기’는 이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가상의 나라 ‘꼬리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상 역사드라마로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블랙코미디다. 이 감독은 “20년이 지나고 보니 그동안 재고품만 계속 팔아먹은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이번 기회에 신작을 꺼내보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엔 tvN 드라마 ‘미생’의 오 과장 역으로 주가를 높인 이성민을 비롯해 전혜진 민복기 정석용 등이 출연한다. 차이무 17년차 단원인 이씨는 “여기서는 밤새워 술을 마셔도 수다가 끊이질 않고, 쉰살이 다 됐는데 여전히 (이 감독한테) 야단맞는다”며 “이곳에서 좋은 연기란 무엇일까 고민한 것이 배우로서 버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달 4일부터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는 ‘원 파인 데이’는 이 감독에 이어 2003년부터 극단 대표를 맡고 있는 배우 겸 극작·연출가 민복기 씨의 신작이다. 지명수배자인 취객과 동네 아주머니를 물어 개장수에게 팔려간 개가 각각 경찰과 개장수로부터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영화 ‘암살’에서 황덕삼으로 활약한 19년차 차이무 단원 최덕문과 박명신, 신혜경, 김용현 등이 출연한다. 민 대표는 “오랫동안 함께한 배우들이 이제 대부분 40~50대”라며 “평균 나이가 많은 극단이 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경로당에 모이듯 연극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지금처럼 계속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이무 연극을 통해 수많은 배우와 연을 맺은 이 감독은 20주년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극단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고재연/송태형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