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은 신축 개관 기념전 '천경자의 혼'을 열었다.

이에 앞서 같은 제목의 화집도 발간했다.

당시 황성옥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은 1998년 고건 시장과 기증 협약을 체결한 후 작품을 인수하기 위해 압구정 자택을 방문했을 때 작품을 하나하나 꺼내주며 살점을 떼어 주듯 아파하던 노화가의 모습을 바라봤다고 적었다.

황 연구원은 그림이라는 유형체가 아닌 마치 작가의 생명과도 같은 무형체를 인수받은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미술관에 기증된 천경자의 작품은 1940~1990년대까지 작품인데, 일본 유학시절 작품부터 자화상, 다양한 인물화, 외국여행을 통해 그린 풍물화와 드로잉 등 93점이었다.

자전적 채색화 중에선 천경자의 존재를 화단에 각인시킨 '생태', '여인들', '바다의 찬가' 등과 함께 인물화로는 화백의 상징이 된 여인과 꽃, 뱀이 모두 등장하는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등이 포함돼 있다.

여행풍물화로는 62점이 기증됐다.

풍물화는 1969~1997년 30여 년간 제작됐는데 기증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라만 17개국에 이른다.

화집에 따르면 1969~1974년 세 번의 여행 작품은 주로 여행지의 감흥과 순간을 빠르게 포착한 그림이 많았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화려한 채색의 풍물화가 눈에 띈다.

1969년 처음 시작한 해외 스케치여행 장소였던 미국 뉴욕은 고인의 마지막 머무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기증작품 중에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배경이 된 영국 하와스, 헤밍웨이 생가가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섬 등 문학을 테마로 한 작품도 7점 포함됐다.

연도별로는 1970년과 1980년대가 각각 27점과 25점으로 많고, 유형별로는 여행 풍물화에 이어 인물화 14점, 드로잉 9점 등이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생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길례언니', '황금의 비', '환상여행'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시실 안내책자는 그를 '영원한 나르시시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꿈과 사랑, 환상에서 비롯된 정한 어린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은유한 것이다.

화백은 생전에 "그것이 사람의 분신이거나 동식물로 표현되거나 상관없이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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