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감성의 놀이터로 만들었죠
“저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창의성을 미리 설정하거나 ‘공식’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잘 모르는 세계에 스스로를 던져놓는 것을 즐기죠. 그 속에서 즉흥적으로 배우고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것을 좋아해요.”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8일부터 열리는 개인전(12월 31일까지)을 위해 서울을 찾은 덴마크 출신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43)는 7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패션은 예술, 음악, 퍼포먼스 등과 같은 나의 모든 관심사를 하나로 아우르는 좋은 우산과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빕스코브는 패션뿐 아니라 사진,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 온 ‘멀티 크리에이터’다. 세계 3대 패션스쿨 중 하나인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을 졸업한 그는 20여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2003년 실험적이고 형식을 파괴한 패션쇼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오페라와 발레의 무대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한다.

창작 과정을 ‘놀이’처럼 즐긴다는 그는 “작업을 할 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먼저 실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패션을 ‘입기 위한’ 옷이 아니라 ‘자유롭고 열린 표현 수단’으로 여기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패션이 예술의 모든 영역으로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전시공간도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감각의 놀이터’처럼 꾸몄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패션과 미술, 음악의 결합을 연출한 대형 설치작업 ‘민트(mint)인스티튜트’. 박하향이 가득한 전시장 안에 풍선처럼 부풀려진 30m 길이의 구조물에서 박하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는 “마시멜로 같은 음식과 음료, 캐릭터, 향기 등 모두 박하 색상에서 발현된 아이디어로 작품을 창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모델들이 런웨이에 누워 있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던 패션쇼 ‘부비 컬렉션’에 사용했던 브래지어 모형의 가슴 오브제들도 관람객을 반긴다. 전시장 벽을 채운 400여개의 가슴 조형물 사이 사이에 그의 대표 의상 40여점도 함께 걸었다. 그는 “브래지어 조형물이라는 오브제는 어머니·고향 같은 의미와 함께 남자 아이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섹슈얼한 의미도 지니고 있다. 당시 패션쇼에서 가슴 조형물로 에덴동산을 연출했는데 이 컬렉션을 보기 위해 200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밖에 나일론 양말을 집어넣어 다양한 구조물로 표현한 작품과 ‘나체’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 의상 제작 및 패션쇼 준비 과정을 담은 사진 등도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전시 개막일인 8일 열리는 오프닝 이벤트에서는 빕스코브의 퍼포먼스와 함께 8m 크기의 작품 ‘뽀빠이’도 선보일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