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작가-비평 '이해관계 동맹'이 만든 씁쓸한 이면
'집 나간' 한국문학 되돌리려면…"외부권력 형성돼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이른바 '돈 되는 작가'와 이를 통해 돈을 벌려는 상업적 출판사, 여기에 소속돼 이견을 내기 어려운 평단이 만든 씁쓸한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가를 배출해야 한다는 문학계의 조급함도 논리적인 비판이나 근거 있는 의혹 제기조차 뭉개고 '신경숙의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신경숙 사태가 하나의 문학적 사건을 넘어서 자본주의와 일부 권력에 젖어든 문학계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규명하며 문학 밖에서 문학을 감시할 수 있는 권력이 형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곪은 문화권력이 만든 신경숙 사태 = 신경숙 사태는 작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학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신경숙 문학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자체를 봉쇄하고 상업주의에 타협한 문학계의 고질적 문제가 결국 곪아 터진 것이다.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긴급토론회에 앞서 원용진 문화연대 공동대표가 "우리 문학의 썩은 곳을 도려내 한국 문학의 저력이 빛나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도 이 문제가 문학계 전반의 치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인식에서 나왔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신경숙은 '환금성'이 탁월한 작가였고, 그가 쓴 책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그를 '한국문학의 보람'이라고 칭하며 떠받들었다.

이를 견제해야 할 비평가들은 출판사의 압력 속에서 반체제 지식인이 아닌 산업적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기능을 잃어버렸다.

결국 한국 문학은 '비평적 베팅' 장소로 희화됐고, 문화공동체의 상징권력과 명성을 둘러싼 패권주의는 신경숙을 '무오류의 작가'로 만들었다.

이 교수는 "신경숙 사태는 한국 문학이 돈과 패거리 권력을 무장돼 경과했던 십수년의 실험이 희·비극적으로, 어떤 희망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신경숙 소설 속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라고 자조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 교수는 "신경숙 사태로 제기되는 문제 제기는 한국 문학의 질서가 특정 출판사를 중심으로 고착돼 있고 출판사업주의가 만들어내는 신화에 대한 보편적 상식에 입각에 이뤄지는 문제제기"라고 지적했다.

◇ "신경숙은 에이스가 아니다" = 출판사의 '신경숙 밀어주기'의 한 이면에는 대표작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한몫했다.

한국 문학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욕망이 '신경숙 신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대형 출판사들은 '한국 대표작가'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연합했고, 이 과정에서 한 작가가 문학적 경향이나 지향과 상관없이 출판사를 번갈아가며 출간하는 관행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신경숙의 초기작인 '풍금이 있던 자리'를 비롯해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문학과 지성사, '외딴방', '리진', '깊은 슬픔', '바이올렛' 등은 문학동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자 먹는 사람들'과 '엄마를 부탁해'는 창비에서 나왔다.

여기서 파생한 더 큰 문제는 비평의 무력화다.

문학비평이 특정 출판사와의 관계 속에서만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주요 출판사들이 연합해 만들어 낸 '신경숙 신화'를 깰 평론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이해관계 동맹체로 변질된 주요 문학출판사와 매체에서 신경숙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가 더 이상 등장할 수 없다"며 "그 결과 신경숙은 무오류에 가까운 찬사로 치장된 비평에 둘러싸이게 됐다"고 말했다.

심보선 시인은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라는 표현으로 신경숙을 스타로 만들려고 한 문학계의 행태를 비판하며 "에이스 발굴과 육성이라는 비평적 강박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의 다양한 글쓰기와 활동의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집 나간' 한국문학을 위한 제언들 =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인해 우리 문학이 '표절 트라우마'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표절 의혹이 제기된 6월 16일 이후 우리 문학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 교수는 "신경숙 표절에 대한 문제 제기는 특정 작가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문학권력의 작동방식과 한국문학의 갱신을 위해 온몸을 부딪혀 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등단시스템, 문학매체 발간 시스템, 문학상 수여 시스템, 문학출판 관행 등 일련의 문학 질서를 전복할 문학권력의 외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는 문학권력의 외부에 있는 아웃사이더와 건강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고 당부했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공론의 장을 통해서 '표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최소한 문학작품에서 어떤 것이 표절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 역시 "법적 규정은 아니어도 윤리규정, 원칙과 규범 만들 필요가 있다"며 "넓은 범주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성찰과 전망의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e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