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7월 독일군과 소련군의 탱크전이 벌어진 쿠르스크 전장에서 한 독일군 포병이 머리를 감싸쥔 채 앉아 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소련을 점령하겠다는 히틀러의 야망이 무너졌다. 지식의날개 제공
1943년 7월 독일군과 소련군의 탱크전이 벌어진 쿠르스크 전장에서 한 독일군 포병이 머리를 감싸쥔 채 앉아 있다. 이 전쟁의 패배로 소련을 점령하겠다는 히틀러의 야망이 무너졌다. 지식의날개 제공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3700여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25년 뒤 또다시 발생한 세계대전으로 50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원자폭탄은 일본은 물론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책마을] 참혹한 전쟁 후…인류는 더 안전하고 부유해졌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참사다.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전쟁의 역설》에서 이런 전쟁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는 다른 주장을 조심스럽게 편다. 저자는 “아주 큰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은 인류를 좀 더 안전하고 부유하게 만들었다”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들이 오히려 더 최악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는지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석기시대 사람들의 10~20%는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제한 뒤 20세기를 주목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대량학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기아로 1억~2억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는 20세기를 산 전체 인구 약 100억명의 1~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까지의 전쟁은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바로 나올 법하다. 모리스 교수는 전쟁과 국가를 연결해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한다. “전쟁의 승자는 패자를 복속시키면서 점점 큰 사회를 만들어나갔다. 이렇게 커진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강한 정부가 필요해졌고, 또 정부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 안에서 폭력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모리스 교수가 말하는 전쟁의 효용이자 역설이다. 그는 전쟁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발전시켰는지 1만년의 역사를 넘나들며 설명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쟁은 다르다. 지구상에 있는 여러 나라는 경제력만 키운 것이 아니라 군사력도 함께 키웠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넘어 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무기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전쟁이 일어나면 파괴와 동시에 더 큰 것을 창조했던 과거와 달리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는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할지도 모를 전쟁을 막기 위해서 ‘세계 경찰’ 미국의 역할에 주목한다. 미국은 향후 40년 동안에도 군비를 유지해야 하고 믿을 만한 ‘리바이어던’으로서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내부 재정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다음에는 컴퓨터 기반의 정보기술이 세상을 통제하는 ‘팍스 테크놀로지카’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대한민국을 ‘전쟁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냉전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동시에 높은 소득, 세계를 선도하는 교육과 의료 수준을 갖춘 한국을 ‘가장 혁신적인 국가’라고 호평한다. 지구적인 부의 증가는 사람들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묶어 놓으며 이에 따라 폭력도 점차 비효율적인 것으로 변했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다. 저자는 “전쟁이 터지면 그 어느 때보다 목숨을 잃을 위험이 커졌지만 장기적으로는 평화를 이룩했고, 미래에는 폭력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