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가슴 적시는 연가에 객석 '뭉클'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제작해 서울 서계동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사진)의 원작은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고전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다. 1897년 발표된 5막 운문 희곡으로 17세기 프랑스 실존 인물인 시인 검객 시라노를 모델로 했다.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영화 ‘시라노’(1990년 작)로 잘 알려졌다.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미남 친구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쓰는 편지 속에 록산느를 향한 마음을 담아야 했던 시라노의 낭만적인 사랑을 그렸다.

고전을 청소년극으로 각색했다니 깨나 교훈적일 것이란 인상을 준다. 연극을 보고 나니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전하는 ‘시라노’만큼 청소년극을 만들기에 적합한 작품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은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엄친아’ ‘콜!’ ‘우리 썸 탈래?’ 등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 유머를 더했다. ‘낭만 활극’을 표방한 무대답게 적재적소에 밧줄과 사다리를 이용해 극을 역동적으로 만든 점도 인상적이다. 시라노는 칼싸움할 때조차 시를 읊으며 리듬감을 살린다. 극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등장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연이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작품의 백미는 시라노가 크리스티앙을 가장해 록산느에게 보내는 수많은 사랑의 노래다. “입에서 나온 말은 귀로 들어가지만 눈으로 한 말은 마음으로 향하거든.” 현대적인 연극 기법 사이에서도 100여년간 사랑받고 있는 고전의 언어는 빛을 발한다.

“처음엔 당신 외모에 반했지만, 이젠 당신의 영혼뿐이에요.” 록산느가 전쟁터로 찾아와 크리스티앙에게 고백하는 이 말은 극의 주제이기도 하다. 록산느는 돈과 권력을 가진 드 기슈, 잘생긴 외모의 크리스티앙,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시라노 중에서 시라노의 영혼에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비록 그게 크리스티앙의 영혼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서충식 연출가는 “시라노가 죽기 전 록산느에게 ‘우리는 어리석었지. 그리고 환하게 빛났지’라고 말하는 대사가 참 좋다”며 “청소년 시절 사랑에 접근할 때 외모, 돈, 영혼 등을 놓고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그게 통과 의례이자 성장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시라노의 대사는 어리숙했던 청춘을 회상하는 어른에게 건네는 대사이기도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