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 "시는 정신에 탄력을 주고 삶의 구김살을 펴는 과정"
“등단 5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시를 오래 많이 썼구나’ 하는 정도. 앞으로도 시가 써지면 또 쓰겠지요.”

시인으로 불린 지 올해로 50년이 된 정현종 시인(76·사진)의 소감은 담담했다. 1965년 ‘독무’로 등단한 그는 재래적 서정시를 혁신하고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펴낸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는 꾸준히 시를 짓고 살아온 세월의 결과물이다. 시집과 함께 그간 기고했던 글을 모은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도 출간했다.

지난 1일 서울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서 만난 시인은 50년이란 세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현재’를 얘기했다. 그는 “시란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웃고, 괴로워도 축제로 만드는 것”이라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거장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명작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인을 ‘괴로워도 흥을 내야 하는 독특한 인종’이라고 정의했다.

“시란 그렇습니다. 과거에 짓눌려 있기보다 지금을 봐야 합니다. 모든 순간이 시작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시가 나올 수 없어요.”

시집에는 시인이 그동안 바라보고 생각했던 주제는 물론 사람들이 겪은 세상사도 담겨 있다. ‘장엄희생’은 천안함사태 때 순국한 한주호 준위를 기리는 시다. ‘이 행동은 무슨 행동인가?/ 행동 중의 행동이며/ 아주 드문 행동이다.’(‘장엄희생’ 부분) ‘여기도 바다가 있어요!’에서도 순국한 장병 46명의 넋을 추모한다. 재즈가수 나윤선이 자기의 우상과 함께한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도 시를 썼다. ‘그 한없이 흘리는 감격의 눈물에 나는/ 감격해서/ 왈칵 눈물이 나온다-아./ 저렇게 구김살 없는 영혼이 있구나!’(‘찬미 나윤선’ 부분)

그는 “시를 쓰거나 예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민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좋은 일이나 비극이 있을 때마다 드는 강한 느낌을 시로 옮겼다”고 말했다. 시인은 사람들이 예술을 접해야 하는 이유를 ‘정신적 탄력’이란 단어로 설명했다. “젊든 나이가 많든 인생살이는 쉽지 않잖아요. 이 과정에서 정신이 늘 탄력이 있기 어려우니 그럴 때 예술을 만나는 거죠. 이는 삶의 구김살을 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