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숭례문.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은 조선왕조를 포함해 2000년이 넘도록 한민족이 살았던 공간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삼으면서 서울은 600년 넘게 한반도의 중심지였다. 이 중심을 아우르는 공간이자 구조물이 서울 한양도성이다. 한양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내려온 축성 기법과 성곽 구조를 계승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며 조선의 성벽 축조 기술 변화와 발전 과정을 담고 있다.

이상해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한양도성은 역사의 표정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교의 덕목, 공간미학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며 “여기에 삶과 예술 공간의 역할도 했다”고 소개한다. 조선왕조실록은 한양도성 건축사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건축 정책에 참여한 관료들이 누구였는지부터 성벽을 만들 때 쓴 돌과 나무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개축 및 보수를 할 때면 어디를 고쳤는지, 새로 만든 것은 무엇인지도 기록했다. 성벽을 만들 때 농번기나 겨울을 피해 작업했다는 사료를 보면 백성들의 생업과 안전을 고려해 도성을 건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인지문.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흥인지문.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한양도성 사대문에는 유교의 전통 덕목인 오상(五常) 중 네 가지 덕목인 인(仁)·의(義)·예(禮)·지(智)가 차례로 적혀 있다. 흥인(興仁)문, 돈의(敦義)문, 숭례(崇禮)문, 홍지(弘智)문이다. 이 교수는 “성문이 단순히 사람이 오가는 공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을 문에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양도성 주변을 도는 순성(巡城)의 역사도 오래됐다. 처음에는 성벽을 점검하는 치안 목적이었지만 점차 성벽 주변을 따라 경치를 즐기는 유람이 유행했다. 한양도성 주변에선 사람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거나 연을 날리며 놀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도성 주변을 걸으면 한양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양을 둘러싼 산속에서 쉴 수도 있다. 단오나 사월초파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치렀다. 놀이뿐만 아니라 각종 제사도 도성 곳곳에서 지냈다. 이처럼 한양도성은 정치적, 사상적 측면은 물론 일반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했다.

[600년 한양도성] 인(仁)·의(義)·예(禮)·지(智) 담긴 사대문…성곽길 따라 '600년 도읍지'를 거닐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면서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에는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힌다는 이유로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됐다. 이듬해인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헐리기 시작했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는 운명을 맞았다. 광희문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됐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 근처에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했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주택·공공건물·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점점 훼손됐다.

정부는 1968년 숙정문 주변에서 한양도성 중건을 시작해 1974년 전 구간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한 번 훼손된 문화재를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해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래 쌓인 석재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는 한양도성의 역사성을 온전히 보존해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기 위해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했다. 2013년 10월에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계획을 수립해 운영하고 있다.

심말숙 서울시 한양도성도감 과장은 “한양도성은 세계적으로 인구 1000만명이 사는 수도를 둘러싼 도성 중 규모면에서 가장 큰 곳”이라며 “조선 왕조 500년과 일제강점기, 근대화로 이어지는 600여년을 한민족과 함께한 역사적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심 과장은 “한양도성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로 쓰이고, 순성 프로그램 등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라고 덧붙였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