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까지 위로·감사…박목월을 추억하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 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나그네 전문)

박목월(1915~1978·사진)은 한국의 서정시를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이다. 목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인에게 시를 배운 제자 시인들이 16일 헌정 시집 적막한 식욕(문학세계사)을 냈다. 허영자, 김종해, 이승훈, 유안진, 정호승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40명의 헌정 시가 담겨 있다.

시인이 작고한 지 37년. 제자 중 몇 명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박목월의 문하 시인들은 여전히 한국 시단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허영자, 김종해, 오세영, 이건청, 신달자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오세영, 유안진 시인 등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많은 제자들이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거나 출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건청 목월문학포럼 회장은 “이번 헌정 시집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데 의미가 있다”며 헌정 시집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스승 목월 내외분이 우리집에 오셨다/상계동 저녁 어스름이 하늘에 깔리고/그 밑에서 불암산이 발을 씻고 있었다’(저녁밥상 가운데)

"삶의 고통까지 위로·감사…박목월을 추억하다"
헌정시 ‘저녁밥상’을 쓴 김종해 문학세계사 주간은 제자의 집을 찾았던 따스한 시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김 주간은 “헌정 시집에 참여한 시인들은 선생께 직접 가르침을 받거나 신춘문예 등에서 추천을 받았던 인연이 있는 이들”이라며 “선생께서 1975년 시 전문지 심상 을 만들 때 일을 도왔던 경험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뒤늦게 헌정 시집을 만들어 스승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목월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달픔도 아름답게 승화시킨 시인이다. 시 ‘가정’ 속엔 가장으로서의 무거움이 잘 표현돼 있다.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가정 가운데)

‘대숲 아래서’ 외 2편의 시를 실은 나태주 시인은 고인을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떠올렸다. 나 시인은 “박 선생님은 따뜻하고 엄격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며 “곤궁한 가정 얘기를 쓰면서도 원망이나 불평 대신 위로와 감사를 찾으셨다”고 추모했다.

헌정 시집 발간 외에도 목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목월문학포럼’ ‘한국시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 공동 주관으로 오는 24일 서울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박목월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5월까지 백일장, 특별 전시회, 학술 심포지엄 등 각종 추모행사가 이어진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도 박목월 시인을 비롯해 강소천, 곽종원, 서정주, 임순득, 임옥인, 함세덕, 황순원 등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학인을 조명하는 기념문학제를 열 계획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