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서남부 해안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12사도상.
호주 서남부 해안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12사도상.
추위에 굳은 몸이 우두둑 신음을 내지른다. 바쁜 일과에 쫓기다 보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여유도 없다. 수목을 벗 삼아 다녔던 게 대체 언제였는지…. 햇볕과 바람의 위로가 필요한 때다. 자연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겨우내 축 처진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눈을 황홀케 하는 풍광 좋은 길을 걸으며 거친 숨을 내뿜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해외에도 제주 올레길처럼 걷기 좋은 곳이 많다.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각 관광청이 추천하는 걷기 좋은 길은 어디일까.

순례하듯 만나는 호주의 12사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는 많고 많다. 그중에서도 호주 서남부의 해안을 따라 뻗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aod)는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기암절벽과 부둣가, 한적한 해변, 어촌마을 등이 어우러진 풍광은 방문객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대부분 여행자는 멜버른에서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당일로 다녀온다. 그러나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짧은 여행으로는 부족하기만 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제대로 즐기려는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걷기’가 대세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는 차를 타면 그냥 스쳐 지나갈 보석 같은 장면을 모두 보고 느낄 수 있는 워킹 코스다. 멜버른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어촌 마을 아폴로 베이에서 출발해 포트켐벨 국립공원의 12사도상(Twelve Apostles)까지 총 104㎞에 이른다.

반나절 코스부터 전 구간 완주를 위한 7일 코스까지 여행객 각자의 일정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길은 인적이 드문 해변과 탁 트인 들판, 울창한 숲, 높은 해안 절벽을 두루 통과한다. 가끔 만나는 왈라비, 코알라 등의 야생동물은 걷느라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해안 가까이에 늘어선 거대한 바위 무리인 12사도상(12 Apostles)은 코스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다. 큰 바위 높이가 70m에 이르며, 예수의 열두 제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침식 작용 탓에 현재는 8개만 남았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장관은 변함 없다. 특히 노을 지는 저녁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채 파도에 맞선 바위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greatoceanwalk.com.au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에서는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며 트레킹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에서는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며 트레킹 할 수 있다.
몽블랑과 가까운 마을에서 트레킹을

프랑스의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은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해발 4807m)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마을이다. 해발 1035m에 자리한 휴양도시로, 몽블랑 바로 아래에 있어 늘 관광객과 산행객으로 북적인다. 예쁜 산장, 개성 넘치는 카페, 세계 각국의 요리를 선보이는 수십 개의 레스토랑, 선술집, 라이브 바 등도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알프스는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등으로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대자연과 교감하며 걷는 트레킹의 인기가 매우 높다. 샤모니에는 총 길이 350㎞에 달하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하이킹 성수기인 6~8월에는 호텔 객실 전쟁이 벌어질 만큼 등산객이 몰린다. 샤모니에서 꼭 타야할 것은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 케이블카다. 몽블랑을 바로 밑에서 감상할 수 있는 해발 3777m의 전망대까지 단숨에 올라간다. 여기서 그냥 마을로 돌아오면 서운하다.

관광 후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정거장인 플랑 드 레귀(2317m)에 내리면 가벼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로서 이곳을 출발해 몽탕베르 열차역(1914m)까지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걷다 보면 아래로는 샤모니 시내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며, 눈앞으로 레 드뤼(해발 3754m) 등의 고봉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빙하, 만년 설산의 영롱함, 상쾌한 공기가 선사하는 자연의 축복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로 직행한다면 절대 깨닫기 어려운 감흥일 것이다. 평소 산행을 해본 적 없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코스가 평탄한 편이라 임산부나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객도 많으니까. chamonix.com

하와이의 원시 자연을 훑어본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칼랄라우 트레킹 코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칼랄라우 트레킹 코스.
하와이 제도의 최북단에 자리한 카우아이 섬의 가장 큰 매력은 열대우림, 계곡, 절벽이 어우러진 원시적이면서 드라마틱한 분위기다. 영화 ‘쥬라기공원’ 등의 촬영지였다니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카우아이 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나팔리 코스트다. 나팔리는 하와이어로 ‘절벽’이라는 뜻이다. 바다를 마주한 27㎞ 길이의 절벽이 늘어선 해변으로, 조각칼로 파낸 듯 깊은 상처를 가진 산들이 이어지면서 어마어마한 장관을 연출한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려 왔지만 짙푸른 바다를 마주한 산과 절벽의 위세는 여전히 씩씩하기만 하다.

차가 닿지 않는 나팔리 코스트의 진수는 오직 칼랄라우 트레일(Kalalu Trail)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17.8㎞ 길이의 이 트레킹 코스는 섬 전체를 아우른다. 카우아이 섬 북부의 하에나 주립공원 케에 비치(Ke’e Beach)에서 시작해 서쪽의 칼랄라우 비치(Kalalau Beach)까지 연결되며 편도만 약 7시간이 걸린다. 워낙 길이 좁고 험난해서 초보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천국이 지상에 재현된 듯한 카우아이의 속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전 세계 하이커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나팔리 코스트를 만날 수 있기 때문. 또한 크루즈를 타고 해변을 둘러보는 상품의 경우 돌고래 투어나 스노클링도 겸할 수 있으니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 선택하면 된다. kalalautrail.com
홍콩 트레일 코스에서 본 바다 풍경.
홍콩 트레일 코스에서 본 바다 풍경.
남들과 다른 곳에서 홍콩을 만나다

왜 홍콩까지 가서 산을 걷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망대가 아닌 곳에서 홍콩의 멋진 스카이라인과 푸른 바다를 만끽하는 즐거움은 시도해 본 사람만이 안다. 조명이 화려한 홍콩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곧 푸른 자연이 펼쳐진다. 총 길이 303㎞에 달하는 트레일 코스는 홍콩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이다. 종류는 4가지로 홍콩 트레일(약 50㎞), 윌슨 트레일(78㎞), 맥리호스 트레일(약 100㎞), 란타우 트레일(약 75㎞)로 나뉜다.

각 트레일은 다시 세부 구간으로 구분된다. 가장 유명한 구간은 ‘용의 등’이라는 뜻의 드래곤스백(Dragon’s Back)이다. 굽이치는 산등성이의 모습이 마치 꿈틀대는 용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려한 경관 탓에 2004년 미국 타임지가 아시아 최고의 도심지 하이킹 코스로 꼽았다. 홍콩 남해를 내려다보며 걷는 4.5㎞ 트레킹 코스이며, 정상인 섹오피크(Shek O Peak)가 해발 284m 정도여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코스 초입에는 갈대와 관목 수풀을 양쪽으로 두른 황톳길이 이어지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빅 웨이브 베이(Big Wave Bay)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40분 정도면 드래곤스백의 최고봉인 섹오피크에 도착한다. 섹오피크에서는 여유롭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땀을 식히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 섬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섹오 빌리지의 고급 저택들을 구경하는 것도 특별한 재미. 천천히 걸어 내려와 인근의 아기자기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허기를 채우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홍콩을 여러 번 가봤다는 이들이라도 트레일을 일정에 포함시켜 보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매력이 펼쳐질 것이다. hiking.gov.hk/eng
캐나다 스탠리파크.
캐나다 스탠리파크.
호수에 알프스 산맥이 담기다

짧은 일정으로 스위스에 들르는 많은 여행객은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를 다녀온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융프라우와 작별하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특히 봄에는 하이킹을 하는 것이 가장 ‘남는 일’이다.

해발 1034m에 자리한 그린델발트(Grindelwald)는 융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아이거(Eiger)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트레킹의 거점이다. 산과 푸른 초원, 스위스식 전통가옥 샬레 등이 어우러져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뛰놀 듯한 정경을 자랑한다. 봄에는 노란 꽃이 융단처럼 펼쳐지며, 여름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나 방문객의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해발 2168m의 피르스트(First)로 올라가면 바흐알프제(Bachalpsee) 호수로 향하는 트레일이 있다. 표고 차는 약 140m이며 편도 3㎞ 길이의 하이킹 코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내내 푸르른 알프스의 영봉이 펼쳐지면서 눈을 맑게 한다. 완만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지만 경사가 심하지 않아 누구나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다녀올 수 있다. 이 코스는 바흐알프제 호수에 비친 산의 모습 때문에 특히 인기가 높다. 날씨가 맑을 때는 호수에 알프스의 설산이 찍히듯 반영돼 그림엽서 속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휘르스트에서 그린델발트로 내려갈 때는 트로티바이크를 타는 것이 최고다. 트로티바이크는 체인이 없는 자전거로, 내리막길에서만 쓸 수 있다. 완만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목가적인 스위스 풍경을 오롯이 가슴 속에 담을 수 있다. 알프스의 거대한 벽을 바라보며 소들이 풀을 뜯는 농장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면 상쾌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는다. 스위스에서 하루를 더 머물더라도 그린델발트에 들러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grindelwald.ch
캐나다 스탠리파크.
캐나다 스탠리파크.
밴쿠버 도심 속에서 접하는 힐링 워킹

캐나다 밴쿠버는 세련된 도시적 면모와 아름다운 대자연이 공존하는 여행지다. 멋진 숍과 레스토랑, 스타일리시한 호텔 등이 즐비한 밴쿠버에는 멀리 가지 않더라도 걷기 좋은 길이 도시 한편에 놓여 있다.

스탠리파크(Stanley Park)는 밴쿠버 다운타운 북서쪽에 있는 공원이다. 밴쿠버 시민들의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매년 800만명이 찾고 있으며 1888년 조성 당시의 총독인 스탠리 경의 이름을 따왔다. 명칭과 달리 내부 시설은 단순한 공원을 넘어선다. 면적이 400만㎡를 넘는 데다 안에는 9000종이 넘는 해양생물을 보유한 밴쿠버 수족관, 2㎞ 길이의 철길을 달리는 미니기차, 인디언 원주민의 유적이 보존된 토템폴(Totem Pole) 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긴 1500m 길이의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Lion’s Gate Bridge)도 공원 북쪽 끝에서 만날 수 있다.

공원 곳곳에는 울창한 숲과 해안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나 있다. 특히 방파제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는 길이가 22㎞에 달한다. 산책이나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려는 이들이 주말마다 북적인다. 방파제를 따라 스탠리파크 주변 9㎞를 둘러보는 데 걸어서 3시간, 자전거로는 1시간이 걸린다. 고풍스럽게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스탠리파크는 특히 가족 여행객이 쉽고 편하게 들러볼 수 있는 곳이다. 풀장, 놀이터, 어린이 농장, 테니스 코스, 골프 퍼팅 연습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와 편의 시설도 가득하기 때문에 아늑한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vancouverparks.ca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