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거리를 가득 메운 유커들. 엔저 효과와 비자 요건 완화 등을 앞세운 일본에 유커를 상당 부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경DB
서울 명동거리를 가득 메운 유커들. 엔저 효과와 비자 요건 완화 등을 앞세운 일본에 유커를 상당 부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경DB
#1. 중국 항저우에 사는 진옌 씨(37)는 다음달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에 부모님과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떠나려고 알아보다가 실망했다. 항공권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됐기 때문. 진씨는 “가능한 날짜의 항공권은 작년 12월 매진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2. 경기 광명에 사는 최인호 씨(38)는 다음달 중순에 떠나는 오키나와 여행 상품을 사려고 여행사에 들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씨는 “항공 좌석이 다 팔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엔低 바람…한·중 관광객들 日로 몰린다
엔저 바람이 한국과 중국 관광객을 일본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인기 여행지로 가는 항공권이 없어 못 팔 지경이다. 이에 따라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관광객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를 추월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각각 1420만명과 1341만명. 격차가 80만명 수준으로 좁혀졌다. 올해에도 일본은 엔저 효과에 힘입어 사상 최대 외래 관광객을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일본으로 가는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급증하면서 2009년 이후 한국이 우위를 차지해온 외래 관광객 규모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까지 몰렸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2017년과 2020년까지 외래관광객 200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목표 달성의 열쇠는 유커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유커는 240만명으로 2013년 대비 83% 증가했다. 방한 유커가 612만명으로 일본의 2.5배에 이르지만 방일 유커의 가파른 성장세는 경계해야 할 수준이다.

일본은 유커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혀온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면서 고소득 중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일부터 개인 관광의 경우 ‘상당한 고소득자와 그 가족’에게 최대 3년인 복수비자 유효기간을 5년(1회 체류기간 90일)으로 늘렸다.

일본 여행에 대한 유커의 만족도와 선호도가 매우 높은 만큼 비자 완화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지난해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유커를 대상으로 ‘다시 일본에 오고 싶은가’를 물어본 결과 ‘꼭 오고 싶다’ ‘오고 싶다’는 응답이 90%를 넘었다.

한국은 정반대다. 현재 유커의 한국 재방문율은 30% 수준에 불과하다. 2013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재방문 의향은 3.95점(5점 만점)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평균치(4.07점)보다 낮았고, 조사 대상 16개 국가 중 14위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국을 찾는 유커가 일본보다 많았던 것은 가격 때문이었다. 장유재 모두투어인터내셔널 사장은 “중국인들은 상품 가격이 비슷하다면 한국보다 일본을 택한다”며 “최근 엔저에 비자 완화 조치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에 빼앗기는 유커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쟁력 있는 융복합 관광상품 창출, 객실 확충, 바가지 요금 근절 등 시급히 해결할 과제가 많다”며 “국민 모두가 관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지금의 우위는 일본에 금세 역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