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스템·비용 분석 없는 서울시향…‘기업式 경영’ 안 통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회가 30일 박현정 대표의 사의를 받아들이고 정명훈 예술감독과의 계약을 1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서울시향 사태’가 일단락됐다. 박 대표의 직원 폭언·성희롱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지만 서울시향 사무국의 열악한 환경과 이로 인한 비효율, 주먹구구식 운영 등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삼성식 경영’이 통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박 대표는 지난 9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서울시향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은 내부 경영정보시스템(MIS)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연주단원을 포함해 직원이 140명 정도 되는데 급여 계산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향은 올해 자체적으로 4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경영정보시스템을 구축, 내년부터 사용할 예정이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2005년 재단 설립 이후 정보기술(IT) 관련 투자 예산이 전혀 책정된 적이 없다”며 “2010년 1900만원을 들여 그룹웨어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첨부파일이 큰 경우 제대로 발송되지 않아 해외 아티스트를 섭외할 때는 외부 메일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공용 악기 관리대장도 없었고 재물조사의 개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시향 관계자는 “악기 관리대장 작성과 재물조사 모두 예전부터 이뤄졌다”면서도 “자료 작성이 수기로 진행되는 등 체계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경영에는 비용 분석도 없었다. 박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공연당 발생 비용 산출을 지시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3~4명 수준인 공연기획팀 인력으로는 연간 30여 차례 열리는 정기 공연과 외부출연, 공익공연 등 1년에 100회에 육박하는 공연 진행과 준비도 버거웠다는 것이 직원들의 항변이다.

지난해 서울시 조사담당관이 서울시향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도 박 대표의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개선 조치를 받은 항목은 비상근 단원 겸직 관련 규정 미비, 계약서 작성과 체결업무처리 소홀, 경영조직 직원 정년규정 미비 등 규정 미비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박 대표가 생각한 조직 운영과 서울시향의 현실이 크게 달랐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후임 대표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하지만 서울시의 출연금이 감소 추세여서 직원을 늘리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의 출연금은 2009~2011년 130억여원을 유지했지만 2012년부터 11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내년에는 102억원으로 줄어든다.

티켓 판매 수익 증대와 협찬·후원금 증가로 자체 조달 재원이 2009년 31억원에서 올해 49억원까지 늘어났지만 총예산은 17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공연이 매진이지만 예술의전당 대관 회수를 늘릴 수 없어 티켓 판매 수익을 더 이상 올리기도 어렵다.

LG아트센터 대표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등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 예술행정가인 김의준 롯데홀 대표는 “예술적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예술가와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하는 행정가의 입장이 달라 선진국 오케스트라에서도 이들 간 갈등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예술가와 행정가가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천필 사무직원 5명 뿐…경기필도 4명…환경 열악

정보시스템·비용 분석 없는 서울시향…‘기업式 경영’ 안 통했다
폭언·성희롱 문제로 박현정 대표가 사퇴하는 과정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사무국의 열악한 상황, 운영의 난맥상 등이 드러났다. 하지만 서울시향은 올해 예산 174억원(인건비 115억원), 사무국 직원 26명, 연주단원 102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서울시향 외에 다른 지방자치단체 운영 오케스트라들의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부천필하모닉의 경우 올해 예산은 35억원 수준이다. 대부분이 부천시 출연금이고 자체 조달 재원은 1억원을 넘지 않는다. 더 많은 시민이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부천 공연 입장권 가격을 5000~1만원 선으로 정했기 때문에 공연 수익이 많지 않다. 사무국 직원은 5명뿐이다. 한 직원은 “공연 날이면 관람객 안내와 무대 장치 관리, 티켓 배부, 자료 사진 촬영 등을 혼자서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상주단체인 경기필하모닉의 사무국 직원 정원은 6명이지만 현재 4명만 근무 중이다.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활동하다 올해 1월 경기필하모닉 예술단장을 맡은 성시연 지휘자는 “홍보, 기획, 마케팅 등 오케스트라 경영 업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며 “아직까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