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 '빅뱅'…새 도서정가제 <中> 동네서점 살아날까

도서관 서적 납품도 수익 기대
"독서 평등권 확보하는 방향으로 도서정가제 더 강화해야 생존"
11일 서울 종로6가 대학천 책 도매상가의 한 서점 주인이 한산한 상가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1980년대 80여개에 달했던 도매 서점수는 최근 10여개로 줄어들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11일 서울 종로6가 대학천 책 도매상가의 한 서점 주인이 한산한 상가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1980년대 80여개에 달했던 도매 서점수는 최근 10여개로 줄어들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새 도서정가제요?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정도지요. 저처럼 서점을 오래 운영한 사람이 볼 때 동네 서점을 살리는 방법은 아니에요.”

서울 대림동에서 40여년간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태영 대림서적 대표(70)는 오는 21일부터 시행하는 새 도서정가제가 마뜩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11일 만난 그는 “도서정가제는 손님이 줄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동네 서점을 살리는 제도여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시행한다면 의미가 더 쇠퇴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초등생 참고서 정가제 적용…고사 위기 책방에 '링거 효과'?

고 대표는 “앞으로 대형·온라인 서점에서 ‘반값 할인’을 할 수 없어 동네 서점에 도움이 될 것이라지만 온라인에 여러 이점이 남아 있는 한 독자층이 (동네 서점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할인이 아예 허용되지 않는 완전정가제를 시행해도 동네 서점은 살아날까 말까”라며 “새 정가제는 동네 서점의 상처 난 곳을 지혈하는 수준도 안 되고 흘리는 피나 조금 닦아주는 정도”라고 비유했다.

출판업계에선 새 정가제 시행 전후 달라지는 가장 큰 변화로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 조건이 약간 나아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최대 할인폭이 현행 19%에서 15%로 줄어들고 온라인 서점의 주특기였던 ‘발행 후 18개월 지난 도서(구간)’와 실용서의 무제한 할인 판매가 금지되면 온·오프라인 간 판매가격 차이가 좁혀질 것이란 설명이다.

초등 학습참고서가 이번에 정가제 대상에 포함되는 점도 중소 지역 서점에는 반가운 일이다. 중소 서점 매출에서 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50%, 최대 80~90%에 달한다.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은 “중·고등서와 달리 초등서는 그동안 정가제 예외 품목이어서 ‘반값 할인’ 판매가 성행했다”며 “앞으로 ‘15% 할인’ 틀에 묶이면 학기 초 등에 집중적으로 구매가 이뤄지는 참고서의 특성상 가까운 동네 서점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 판매하는 도서에 정가제가 적용되는 것도 이들 기관에 도서를 납품해온 지역 서점들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대부분 최저가 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구간과 염가 도서 위주로 구매해 온 도서관들이 앞으로는 정가제 할인 범위 내에서 책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네 서점에 순기능적인 이런 효과들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출판업계의 분석이다. 온라인 서점은 카드·통신 제휴 할인, 경품 제공, 무료 배송 등 동네 서점에 비해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마케팅을 지속할 수 있는 데다 동네 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처럼 최대 ‘15% 할인’을 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덕진 햇빛문고 대표는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사실상의 추가 할인’ 허용은 도서의 일물일가(一物一價)를 유지해 특정 사업자의 독과점에 따른 출판 생태계 파괴를 막겠다는 새 정가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출판업계에서는 이번 정가제 시행으로 ‘동네 서점 활성화’보다는 지역 서점이 급감하는 추세를 다소 완화하는 정도의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국내 지역 서점 수는 1994년 5683개에서 2003년 2247개, 지난해 1625개로 줄어들었다. 백원근 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동네 서점을 활성화하려면 가격 안정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같은 가격으로 도서를 판매해 국민의 독서 평등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가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며 “대형·온라인 서점과 중소 서점에 대해 공급률을 차별하는 출판사들의 행태도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태형/박상익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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