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서울대 학점왕, 창의성은 낙제점
입학 이후 학점이 4.3 만점에 4.0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서울대 사회과학대의 한 학생을 인터뷰하는 자리. “자신의 수용적 사고력이 10점이라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에는 몇 점을 주고 싶은가?”라고 묻자 머뭇거리며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한 4~5점 정도? 근데 창의력은 학점에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창의적이 되려는 노력을 별로 안 하게 돼요.”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을 서울대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서울대 최우등생이라 할 수 있는 학점 4.0 이상의 2~3학년생 46명에 대한 심층면접조사와 1100여명에 대한 설문조사, 미국 명문대와의 비교연구 등을 통해 대학생의 공부법과 문제점, 대안 등을 제시한다.

조사 결과는 놀랍다. 자신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수용적 사고력보다 낮다고 응답한 학생이 설문조사 응답자 중 각각 64.2%와 69.9%에 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 낮다고 대답한 학생들의 학점이 높다는 사실. 학생들은 비판적·창의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교수의 강의 내용을 죽어라 받아 적고 복습하며 외운 결과 높은 성적이 나왔다고 했다. 이들은 팀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다른 팀원들과 협동하기보다는 혼자서 주도하는 편을 택한다.

어쩌다 대학교육이 이렇게 됐을까. 저자는 대학 입시 위주의 초·중·고 교육이 대학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교수들이 그런 능력에 A+를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교수들의 수업방식과 평가 기준이 학생들의 수용적이고 무비판적인 공부를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의 변화도 필요하다. 입학생은 물론 졸업생의 역량까지 추적 조사하는 홍콩 중문대, 연구중심 교수만큼이나 강의중심 교수도 중요하게 대우하는 영국 맨체스터대, 동료 교수의 평가까지 포함해 다면적인 교수평가를 시행하는 싱가포르국립대, 교육전문가가 교수들의 수업 방식을 리모델링해주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등의 사례가 눈에 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수들의 수업 방식이다. 학생들이 질문하고 토론하게 만들어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신경계가 스스로 깨어 있게 하라는 것. TV드라마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에서 본 것처럼.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